"한국은행 총재는 '예의주시'만 하느냐." "자기 할 일은 안하고 남의 일에 훈수만 둔다."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를 동결키로 한 뒤 한은 홈페이지에 쏟아진 서민들의 질타이다. 다짜고짜 욕부터 해대는 전화도 관련부서에 숱하게 걸려오고 있다. 이달 말로 취임 6개월을 맞는 박승 한은 총재가 저금리 기조와 더불어 중대 기로에 섰다. 박 총재는 17일 은행장 간담회(금융협의회)를 소집했다. 콜금리 인상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예금·대출)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는데 바쁜 사람을 왜 자꾸 오라가라 한다"는 행장들의 볼멘소리도 나왔다. 시중에 유동성이 흘러 넘친다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자금총량을 보여주는 총유동성(M3)은 6월말 현재 1천92조원에 달한다. M3 증가율은 지난 3월부터 13%대로 올라서 한은 목표범위(8∼12%)를 벗어나 있다. 더더욱 한은은 "그동안 뭐 했느냐"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박 총재는 지난 4월 초 취임 일성으로 "경제주체들은 금리인상에 대비하라"고 일갈했다. 5월엔 콜금리를 연 4.0%에서 4.25%로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들은 빚을 얻어 아파트 투자에 나섰고 은행들은 넘치는 예금으로 가계대출에 더욱 치중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저금리 정책은 더이상 금과옥조가 아님이 입증되고 있다.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를 기피한다. 박 총재 스스로 "투자는 금리가 아니라 기대수익의 함수"라며 저금리로는 투자유인 효과가 없음을 인정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7백50만가구가 평균 5천만원의 대출금을 끌어썼다. 2가구당 1가구 꼴이다. 전윤철 경제부총리가 "금리인상시 패닉(공황)이 우려된다"고 걱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부와 한은은 지난해 소비와 건설경기를 부추겨 경제성장률을 6%대로 끌어올렸지만 이면에는 서서히 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그 종착역은 금융시장의 신용위기일 수밖에 없다. 한은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중앙은행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라는 격언이 새삼 떠오른다. 오형규 경제부 정책팀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