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kang@nice.co.kr 태풍 '루사'는 우리 땅에 기록적인 재해를 남겼다. 영동지역에 쏟아 부은 집중 호우,1백80명이 넘는 인명피해,5조원을 초과하는 재산손실,7만명 이상의 이재민 발생 등. 무엇보다 들과 바다와 산에 희망을 심고 가꾸던 농어민의 피해가 컸던 점이 가슴 아프다. "온통 다 떠내려가 버려서 원래 집터가 어딘지,논밭의 자리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됩디다.거기다 아직 실종된 사람의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어 한마디로 비참합니다." 수재민을 돕기 위해 공무원 봉사대를 인솔해 다녀온 친구의 얘기다. 그들처럼 직접 수재민을 돕지도 못하고 알량한 의연금 몇 푼으로 자위하던 우리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다. 도로 철도 전력 통신 상수도 등 사회 기반시설이 붕괴되고 도시 전체가 마비된 지역도 있었다. 일부 산골의 경우 생활 터전이 무너진 사실이 사나흘이나 지나서야 외부에 알려졌다. 7,8월에 태풍이 지나가는 것은 우리가 안고 있는 지리적 운명이다. 충분한 사전 예방책으로 재해 발생을 줄이고,발생된 피해는 신속하게 복구하는 것이 자연재해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번에는 피해가 너무 큰 탓인지 뉴스를 들어도 충분한 대비로 피해를 사전에 줄인 경우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더뎌지는 복구를 안타까워하는 소식이 많았다. 태풍 '루사'는 우리의 재해 예방과 복구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마구잡이식 개발과 지역간 이해관계 조정실패는 치산치수에 허점을 키웠다. 잘 다스려서 생활에 이롭게 해야 할 산과 물이 오히려 엄청난 재난을 몰고와 자연에 대응하는 지혜의 중요성을 되뇌이게 한 것이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과 수박 겉핥기식의 관리시스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도 위안은 있다. 피해지역으로 향하는 시민 상인 등 자원봉사자가 어느 수해 때보다 늘어났고 수재의연금도 최고로 많이 모금되었다. 어려운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온정을 베푸는 온 국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여름은 오고 또 태풍도 올 것이다. 이제는 설사 '루사'보다 더 강한 태풍이 오더라도 올해와 같은 피해는 반복되지 않도록 재해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올 추석은 우리 가족끼리만 모여 풍성한 수확을 기뻐만 하는 추석이 되기보다 수재민의 고통을 함께하는 의미 있는 추석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