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금융기관 vs 금융회사 .. 임혁 <경제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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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행동감염(感染)'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먼저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이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정지선에 서 있던 차 중 한대가 신호가 바뀌기 전에 출발하면 다른 차들도 덩달아 출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상식에서 한 사람이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따라 일어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동감염은 비즈니스의 영역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한 회사가 그동안 업계에서의 관행을 깨고 어떤 변화를 시도하면 곧이어 다른 회사들도 따라가는 식이다.
그중에도 국내 은행권에서 행동감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수수료 인상이다.
한 은행이 수수료를 인상하면 다른 은행들도 뒤쫓아 올리는 게 공식화됐다.
얼마전 한 은행이 소액예금에 대해 이자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다른 은행들도 잇따라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최근에는 VIP마케팅이라고 하는 PB(프라이빗 뱅킹) 붐에서 행동감염의 징후가 엿보인다.
은행 간판을 단 곳치고 PB를 안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은행들마다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은행권의 이런 행동감염 현상에서는 하나의 공통된 동기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수익성 증대'다.
위에서 든 세가지 사례가 모두 은행들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취한 조치들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이 '금융기관'에서 '금융회사'로 변신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외환위기 전에는 금융회사라는 단어가 낯설었으나 어느새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보다 더 친숙해졌다.
'금융기관장'이라는 단어도 요즘은 '금융회사 CEO' 또는 '금융경영인'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추세다.
일례로 한국금융연구원이 오는 12일 갖는 이기호 대통령 특보 초청 조찬모임도 '금융경영인 조찬회'로 공지돼 있다.
이처럼 금융기관이라는 용어가 '퇴출' 지경에 이른 것은 기관이라는 명사가 풍기는 '공공성'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 국내 은행들은 영리법인이라기보다 공공기관처럼 여겨졌고 은행들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부실기업이 발생할 때마다 '부도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운운하는 표현이 동원됐고 이를 근거로 무리한 대출이 이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은행은 금융기관이 아니라 금융회사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 '주주중시 경영'이라는 개념이 그 중심에 자리잡았다.
수익성이 없거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행동은 한사코 피한다.
덕분에 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해서일까.
요즘 필자는 다시 금융기관이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은행들이 너무 영악스레 수익성만 챙기는 듯해서다.
최근 돈이 많이 풀려있는 데도 기업자금시장에서는 '국지적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은행들의 지나친 영악함도 한몫 하고 있다.
이런 아쉬움은 더 나아가 '한국적 상황에서' 은행들이 무작정 큰 이익을 내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서방 은행들의 경우와 달리 한국의 은행들은 수익의 거의 전부를 국내에서 얻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무식하게' 잘라 말하자면 국내 은행들의 이익은 고스란히 한국의 기업이나 개인들의 금융비용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은행들은 과거처럼 '공공기관'인 척해서도 안되겠지만 과도하게 수익성에만 집착해서도 곤란하다는 게 필자의 소박한 생각이다.
혹자는 '그러면 어느 정도의 수익이 적정하냐'고 따지듯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대답을 '상장사 평균치'라고 하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까.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