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에서 기술인력들은 어느정도로 대우를 받고있는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는 이공계 출신 임원 및 CEO(최고경영책임자)비율 등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기술과 연구개발분야의 의사를 결정하는 CTO(최고기술경영자)의 도입 비율도 그 가운데 하나다. CTO 현황을 근거로 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기술인력에 대한 인식은 형편없이 낮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제조업체 5백1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식적으로 CTO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SK텔레콤 등 14개사에 머물렀다. 겨우 2.7%에 그치고 만것이다. 전체의 4.4%인 23개사는 공식적으로 CTO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대신 부설연구소장이나 이공계출신 임원에게 CTO 역할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비공식적으로 CTO를 둔 37개사 가운데 기업의 전반적인 연구개발 예산에 대해 CTO가 통제 권한을 갖고 있는 경우는 절반을 조금 넘는 19개사에 불과했다. 37개사중 21개사는 CTO가 회사 기술전략 관련 공식 의사결정을 위해 CEO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회수가 월 평균 1회도 안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CTO가 기술부문을 대표해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는 경우는 전체의 68%로 나타났다. ◆국내 CTO 현황=대기업중 상당수가 명목상으로는 기술담당 임원을 CTO로 지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실질적으로 CTO에 걸맞는 역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CTO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삼성은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이 그룹전체 CTO를,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부문 CEO 겸 CTO를 맡아 기술개발을 이끌고 있다. 윤 부회장 아래에는 CTO 전략실이 개설돼 반도체 통신 디지털미디어 등 분야별로 스태프 역할을 한다. 이문용 부사장,천경준 부사장,박노병 전무 등이 각 부문별 CTO를 맡아 윤 부회장을 돕는 구도다. LG전자의 경우 지난 95년 1월 당시 서평원 전무를 CTO로 공식 임명하고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현재 4명의 사장 가운데 디지털TV 부문을 총괄하는 백우현 사장이 CTO를 맡고 있다. 백 사장은 전자기술원 생산기술원 디자인연구소 등 LG전자의 각 연구소도 책임지고 있다. 반면 허울뿐인 CTO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통신업종 대기업인 A사는 지난 97년 부설 연구소장이던 B씨를 CTO로 임명했다. 연구소장의 임기가 끝나자 예우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결국 그는 지난해 자리를 물러났으며 아직까지 CTO자리가 비어있다. ◆CTO 도입부진 원인과 과제=△기술전략에 대한 인식부족 △부족한 투자 △빈약한 CTO 양성코스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CTO는 기업의 발전전략 가운데 큰 축인 기술전략을 책임진다. 신제품을 실제로 개발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CEO에게 기술·제품전략과 사업참여 여부 등 전략적 의사결정을 조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가 선진국에 비해 늦게 도입된 국내 기업의 경우 기술부문 의사결정까지 오너가 주도하면서 CTO의 자리는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기술부문 조직에 대한 투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D화학의 CTO인 J전무는 "중견기업들의 경우 회사의 운명이 기술이외 부문으로 좌우된다는 판단에 따라 CTO의 역할이 창업주나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CTO를 회사 내에서 체계적으로 키워내는 능력도 부족하다. 장성근 LG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세계적인 기업은 가령 10년차 이상된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기술분야에 남을 것인지 R&D 매니저로 진출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며 "매니저쪽을 택할 경우 인력관리 프로젝트관리 등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CTO로 클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기업의 경우 실력을 갖춘 이공계 전공자가 R&D 매니저로 클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다 엔지니어나 연구원 스스로도 CTO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CTO가 '실무진→프로젝트리더→연구소장→CTO'로 이어지는 'R&D 리더십'의 정점에 있다"며 "R&D 활동을 위해서는 능력과 비전을 갖춘 CTO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또 CTO 제도 정착을 위해 CEO가 CTO에게 기술관련 예산과 인사권을 부여하고 미래 전략기술 수립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강조한다. 연구 개발의 중요성과 CTO의 역할에 대한 조직원의 인식 전환도 시급한 과제중 하나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 협찬 한국산업기술재단 .............................................................................. ◇CTO(Chief Technology Officer)란 기업에서 기술에 관한 의사결정의 전 과정을 책임지면서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하는 전사적 최고기술책임자다. 1960년대 이전에는 연구소장들이 대부분 CTO로 통했다. 70~80년대에는 일본기업의 세계시장 진출로 R&D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에서 연구개발 담당 부사장이 잇따라 탄생했다. CTO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반. 최근에는 기존 CTO 역할에 마케팅 개념을 더한 CInO(Chief Innovation Officer)라는 개념까지 나왔다. 기술외에도 시장과 마케팅을 아는 경영자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