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 진 빚을 갚아라.' 월드컵 4강이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한국축구대표팀에 마지막 과제가 떨어졌다. 바로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3위에 올라 유종의 미를 거둘 상대가 48년전 0-7의 참담한 패배를 안겼던 터키로 정해졌기 때문. 터키는 한국전쟁 때 전투병을 파병했던 혈맹이지만 축구 대결에서는 3차례 맞붙어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상대였다. 특히 첫 대결인 54년 스위스월드컵 때 조별리그 2차전에서 격돌한 터키는 중동과 동유럽, 북아프리카를 휩쓸었던 '투르크 전사'보다 더 무섭게 우리 수비진을 유린했다. 7년 뒤인 61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다시 한국은 터키에 도전장을 냈지만 이때도 0-1로 무릎을 꿇으며 월드컵에서의 수모를 설욕하지 못했다. 오는 3월 독일 보훔에서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가진 친선경기에서 0-0으로 비겨한국은 설욕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그러나 48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만나 나란히 이변을 연출한 한국과 터키는 이제 3-4위를 놓고 맞붙게 됐다. 양팀 모두 엄청난 실력 향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점에서 어깨를 나란히했지만 한국에게 더 뜻깊은 맞대결이 아닐 수 없다. 한국으로서는 3차례 대결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한풀이를 겸해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체면도 살려야 하기에 물러설 수 없다. 또 이번 대회 '이변'의 주인공으로서 '동아시아발 돌풍'과 '유럽 변방의 태풍'대결이라는 점에서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기도 하다. 터키가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 그리고 강한 압박을 구사하는 등 한국과 플레이 스타일이 엇비슷한 점도 흥미롭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안정환과 하산 샤슈라는 새로운 월드스타를 탄생시켰다는 사실도 공통분모이다. 결승토너먼트에서 아시아(일본), 아프리카(세네갈), 남미(브라질) 등 다양한 상대를 겪었던 터키와 달리 유럽팀(이탈리아, 스페인, 독일)만 맞닥뜨려온 한국의 전술대결도 볼거리로 꼽힌다. 29일 대구월드컵경기장은 또 하나의 멋진 승부의 장이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