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경영전문기자의 '경영 업그레이드'] '100마리째 원숭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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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회사는 많지만 과실을 따먹는 업체는 언제나 극소수다.
어디서 차이가 날까.
시스템과 관리 능력에서다.
한마디로 경영이다.
전략 수립에서 가격 전술까지 원칙과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최근 와튼스쿨 MBA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권영설 경영전문기자가 쓰는 경영 칼럼을 매주 월요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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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모래톱에 고구마를 던져 놓았다.
원숭이들은 달고 시원한 고구마 맛에 반한 듯 앞다퉈 달려 들었다.
문제는 고구마에 묻어 있는 모래였다.
그냥 먹는 놈도 있었고 머리를 쓴 녀석도 고작해야 툭툭 털어 먹는 정도였다.
어느날 '이모'라고 이름 붙여진 18개월짜리 암컷이 우연히 새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것.
이모는 제 어미에게 이 방법을 알려줬다.
친구들도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은 또 어미들에게 이 새 방식을 일러줬다.
'고구마 씻어 먹기'는 젊은 원숭이들과 그 어미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그러나 수년이 지났을 때도 섬에는 모래를 털어 먹는 것밖에 모르는 원숭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약 1백마리째 원숭이가 고구마 씻어 먹는 방법을 익혔을 무렵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섬에 있는 원숭이 전부가 고구마를 씻어 먹을 줄 알게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건,실험지역인 섬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다른 섬 원숭이들까지 모두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실험은 1950년대 일본 미야자키현 고지마라는 무인도에서 이뤄졌다.
미국 과학자 라이올 왓슨은 이것을 '1백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불렀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 정도에 달하면 그 종 전체에 그 행동이 순식간에 전파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뜻한다.
학자들은 원숭이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나 조류 곤충류 등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1백마리째 원숭이 이론'이 정작 필요한 곳으로 우선 떠오르는 것은 경영혁신 활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다.
새 방식을 도입해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처럼 경영혁신활동을 시작한 많은 회사들이 가시적인 성과가 적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경영진은 "사원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못해 그렇다"며 불만이고 종업원들은 "구호만 거창하지 바뀌는 것이 뭐 있느냐"며 인상을 쓴다.
결과는 뭔가.
혁신의 가치를 이해하고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줄어간다.
그러나 조급할 것은 없다.
아무리 좋은 방식도 일정 수준의 '진정한' 참여자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전체의' 문화나 논리로 바뀌지 않는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것이 분명히 혁명적이고 가치있는 방법이었지만 이것이 모두들 사용하는 방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단순한 시간만 아니라 그 가치를 인정하는 개체들의 동참이 필요했다.
스스로 경영혁신활동의 가치를 느끼고 기꺼이 동참하는 '1백번째 사원'이 나타나는 순간,경영혁신 활동은 누구나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순식간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침 모델이 있다.
히딩크 방식 말이다.
신문에서 연구소에서 이를 전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방법이 정말 좋고,해 볼 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다.
히딩크식으로 팀을 지도하고 회사를 경영하고 가족을 이끌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다 어느날 '1백명째 히딩크'가 나타날 때 우리 사회는 우리가 믿지 못할 정도로 달라질 것이다.
마치 우리 축구 대표팀이 보여준 것처럼.
그러나 기다리지 말라.
서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또 다른 혁신 사원이나 1백명째 히딩크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또 다른 히딩크가 되고자 꿈꿀 때 그 순간은 더 빨리 올 것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