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마르는 117분. 하지만 `태극전사'의 사령탑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전정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에서 선취골을 내주고도 조급함 없이 동점골을 뽑아내고 연장 접전끝에 승부를 뒤집는 역전골을 뽑아내기까지 히딩크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냉정한 승부사였다. 팔짱을 끼고 굳게 다문 입. 조별리그 때와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상대가 강팀이든 약팀이든 절대 비기는 경기는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 처럼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한 아주리군단과의 8강 티켓 싸움을 앞두고 필승의 전의를불태우고 있었다. 드디어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이탈리아의 공세에 밀릴때도, 안정환이 페널티킥을 실패했을 때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던 히딩크 감독은 전반 18분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취골을 허용하자 불만스러운 얼굴로 언성을 높여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두 팔을 뻗어 올려 공격수들에게 활발한 움직으로 공간을 만들라는 사인을 했고 수비진에게는 좀더 타이트한 마크를 주문했다. 그래도 공격이 막히고 수비의 허점이 보완되지 않자 전반 44분 프란체스코 토티의 부상으로 경기가 잠시 중단되자 물을 마시러 온 홍명보에게 수비의 문제점을 지적해줬다. 후반들어서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자 답답한 듯 핌 베어벡 코치와 잠시 작전을 숙의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시간이 지나 `태극전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여러번 찬스가 생겼지만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자 후반 18분 황선홍, 후반 23분 이천수에 이어후반 종료 7분을 남겨 넣고 차두리까지 투입하며 총공격을 명령했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풀지 않고 속이 타는 듯 연신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초조해 했지만 결코 흥분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지자 차가운 머리를 가진 승부사도 두손을 번쩍 치겨든 뒤 권투의 어퍼컷과 비슷한 종전의 세리머니와 달리 짧은 훅 스타일의 강인한 제스처를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한 가슴은 잠시였다. 연장 전반들어 총공세에도 골이 터지 않자 흥분한 박항서 코치를 진정시키는 냉정한 승부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연장 전반 13분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하자 벤치 뒤의 벽을 치며 흥분한 이탈리아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15분간의 연장 전반이 끝나고 잠시 동안의 휴식시간에 선수들을 마지막으로 독려한 히딩크 감독은 연장 후반들어 황선홍의 헤딩슛이 상대 골키퍼의 가슴에 안기자 두팔을 뻗고 한바퀴 돌며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연장 후반 12분. 117분의 기나긴 승부의 줄다리기 끝에 안정환의 역전골이 터지자 선수들을 얼싸안고 8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국에 월드컵 첫승과 첫 16강 진출에 이어 8강 진출까지 선사한 승부사 히딩크감독의 각본없는 진한 감동의 드라마로 끝났다. (대전=연합뉴스) 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