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거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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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는 환형동물문(環形動物門) 거머리강(蛭綱)에 속하는 무척추생물이다.
전세계에 6백50종 가량 있고 악질목 인질목 문질목으로 나뉘는데 의약용거머리(Hirudo medicinalis)나 우리나라 참거머리는 악질목에 해당된다.
거머리는 침 속에 마취성분을 갖고 있다.
물려도 모르는 건 이 때문이다.
빨면서 피가 굳지 않도록 하는 성분(hirudine)과 빨리 나오도록 혈관을 팽창시키는 물질을 함께 넣는다.
이렇게 해서 보통 한꺼번에 체중의 2∼5배를 빨아들인다.
또 위(胃)에 피나 세포가 섞이는 걸 막는 성분을 지녀 두고두고 소화시킴으로써 1년에 한두차례만 흡입하고도 산다.
바로 이런 성질들 때문에 예부터 치료제로 썼다.
국내의 경우 드라마 '허준'에서처럼 직접 상처부위에 놓기도 하고 잡아다 말린 것(水蛭)을 어혈 월경불순 타박상 등에 처방했다.
18∼19세기 유럽에선 부종과 멍 치료,혈액응고 방지는 물론 정신질환 종양 피부병 통풍 백일해 등 온갖 곳에 썼다.
두통치료를 위해 관자놀이 피를 빨게 하는 식이었다.
결국 '히루도 메디시날리스'가 멸종되다시피해 1827년 오스트리아에선 거머리취급 면허증제도를 도입하고, 48년 러시아에선 무역금지 기간을 정하고 관세를 부과했다.
현대의학 발전으로 남용은 사라졌으나 각종 효용이 입증되면서 다시 쓰이거나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필라델피아 템플대 의대는 침샘에서 혈관벽의 굳은 피를 용해시키고 심장질환 치료에 이용 가능한 히멘틴,다른 곳에선 항암성분을 지닌 안티스타신을 찾아냈다.
이밖에도 거머리는 신경과 행동의 상관관계 및 세균감염 방지 연구 등에 활용된다.
거머리가 관절염 통증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고 한다.
러시아 카잔국립의대 교수팀이 관절염 환자의 질환 부위에 거머리를 놨더니 부작용 없이 통증이 줄거나 사라지고 관절의 운동범위도 확대됐다는 것이다.
논이나 연못에서 달라붙던 거머리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지닌 세대엔 기이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건 모두 쓸모있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주는 일에 틀림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