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 비해 "추종자"라는 단어는 초라해 보인다. 기업들이 리더십은 강조해도 폴로어십 교육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다. 잘못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조직 사회에 몸담고 있는 한 누구나 리더인 동시에 추종자가 되기 때문이다. 전무는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리더인지 몰라도 사장의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받아 적어야 하는 추종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따르기 보다 남을 이끌고 싶어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효율적인 추종자라야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다. 폴로어십은 위대한 리더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해야 하는 자기계발 항목이란 얘기다. 왜 단련해야 하는가. 자기 생각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그것을 좇는 행위가 본성에 잘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배들에게,다른 선수들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이미 리더인 '스타 선수'들이 자존심을 죽여가며 누군가의 '충실한 부하'가 되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로는 어려운 일이다. 각자 수만명의 팬을 갖고 있으면서도 월드컵 첫승,16강 진출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본성적 거부감을 이겨낸 우리 선수들의 추종자 정신이 빛나는 이유다. 선수들이 "해봤자 안되더라" "우리도 다 해봤다"는 태도였다면 결과는 어찌됐을까. "왜 우릴 못 믿고 외국인 감독이냐" 했으면 또 어땠을까. 히딩크의 리더십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표팀의 기본 전형으로 자리잡은 4-4-2시스템 도입 과정을 보자.선수들이 "우린 평생 3-5-2만 해왔다"며 "이제 와서 바꾸면 완전히 익히기 어렵다"고 '평론가적 거부감'을 드러냈다면 어찌됐을까.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 세계 정상급 축구팀이 되기 위해선 돌아갈 수 없는 길이란 판단하에 이 전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평가전에서의 실패도 제대로 익히기 위한 시행착오로 돌렸다. 리더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스스로 그 수준을 맞추는 것은 능동적인 추종자들이 지녀야할 제일 덕목이다. 이에 관해선 한 묶음 이름 '황선홍명보'로 불리는 두 노장의 노력이 돋보인다. 황선홍의 경우는 예전의 최전방 원톱이 아닌 왼쪽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바꿔 받았다. 팬들은 때론 중앙선 이쪽편까지 후퇴해 수비도 하고 미드필더의 역할도 하며 공격의 활로를 찾아다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홍명보의 경우는 대표팀에서 잠시 빠지는 '설움'을 당하고도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다. 리더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표로서 당당히 뛸 수 있는 몸상태요 체력임을 알고 묵묵히 회복 및 체력 훈련에 매달린 것이다. '황선홍명보'는 나름대로 발언권을 자랑할 수 있는 한국 축구계의 상징들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리더십은 우리 대표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폴로어십의 바탕이 됐다. 존경받는 선배나 상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후배와 부하의 귀감이 된다. 법정관리 기업에서 기존 임원 간부들이 급여를 반납하고 휴일을 잊고 온몸으로 모범을 보이면 직원들의 고통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 것이다. 한국팀의 경기를 보면 이제 어지간히 어려워져도 단독 플레이가 없다. 결국 11명씩 싸우는 팀워크의 경기임을 선수들이 철저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력 정신력 팀워크 그리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 히딩크 축구의 철학을 체득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비판적이며 능동적인 폴로어십의 밑바탕은 역사 의식이다. 자신의 희생으로 조직이나 회사가,또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면 분골쇄신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우리 축구는 이번 월드컵 대회를 거치며 세계 강호로 한 걸음 올라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포스트(post) 히딩크,즉 히딩크 이후다. 그가 떠난 뒤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간 뒤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면 역사는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감독과 선수들이 싸우고 격려하며 남겨놓은 리더십과 폴로어십이라는 유산은 확실히 남을 것 같다. 권영설 경영전문 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