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수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요즘 심기가 영 편치않다. 작년부터 외환은행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그는 최근 교수의 사외이사겸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주변의 곱지않은 시선때문에 적잖은 마음고생을 겪고 있다.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 사외이사겸직 등으로 물의를 빚고 중도퇴임한 다음날인 지난10일에도 정 교수는 외환은행 임시이사회에 참석했지만 발걸음이 가볍지만 않았다. 그는 "사외이사를 맡을 전문가 집단이 부족한데 총장도 아닌 일반 교수들까지 사외이사를 못맡게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현재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2백여명의 교수들이 모두 "범법자"로 분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씁쓸해했다. 교수들 겸직허용 입장 엇갈려=교수사회에서는 사외이사겸직이 "뜨거운 감자"이다. 경영대 공대 등 실천.응용학문분야 교수들 중심으로 "영리활동 금지"라는 케케묵은 이유로 사외이사 겸직을 막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명백한 영리활동인 교수들의 벤처창업은 적극 권장하면서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등 공익 기능이 있는 사외이사는 맡아서 안된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입을 모은다.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교수들이 사외이사를 하지 못하도록 것은 이상한 "상아탑"주의적인 발상"이라며 "현재 산업사회 현실과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사외이사제도라는 창구를 통해 현실을 접해 학생들에게 더 현실감있는 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문학 등 순수학문 분야의 일부 교수들은 사외이사 겸직에 대체로 부정적인 편이다. 연구와 강의에 충실해야 할 교수들이 다른데 한눈을 팔면 대학 교육이 부실화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갈피못잡는 교육당국=이처럼 교수사회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작 교육당국은 뚜렷한 입장정리를 하지못하고 있어 일선 교수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각계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교수가 사외이사를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도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해 시행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대학 총장에게도 사외이사 겸직을 허용할지,교수가 사외이사를 맡으면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지 등도 논란거리여서 구체적인 방침이 확정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원칙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재계는 교수의 사외이사겸직 환영=전경련 등 재계는 전문성을 갖춘 교수의 경영.기술자문을 통해 회사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대학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상장회사협의회의 지난해 7월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외이사중 교수비율이 18.5%(2백67명)로 25.2%인 경영인(3백63명)다음으로 많은데 이들을 대신할 인재풀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금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게 재계 입장이다. 김석중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은 "이윤창출이라는 기업의 지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회사가경영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전문성 측면에서 교수가 변호사나 회계사보다 뒤지지 않는데 국가공무원이 영업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교수의 사외이사겸직을 불허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 확보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깊이있는 강의를 진행해야 하는 게 교수의 본분"이라며 "현직 교수가 회사 경영전반을 꽤뚫고 있어야 하는 사외이사직을 맡다보면 "본업"인 연구와 강의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현행법이 교수의 사외이사겸직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교수는 모두 이사직을 그만둬야 옳다"고 주장했다. 이방실.홍성원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