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아 과거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과제들을 점검해 볼 때가 됐다. 거시지표로 보면 현 정권은 경제적으로 전화위복을 이룬 정권이었다. 비록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난국을 물려받았지만,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이전 정권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경제정책에 있어 과거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한국경제를 IMF의 도움과 국민들의 저력을 빌려 상당부분 되살려 놓았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훗날 '경제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이란 평을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각종 거시지표와 현란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경제치적의 내면에는 간과하기 쉬운 몇몇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이의 해결은 차기 정권의 몫이 될 수 있다. 현 정권이 남기는 가장 큰 문제점은 '막대한 공적자금의 회수'가 될 것이다. 차기 정권은 공적자금의 원리금을 갚기 위해 매년 10조원에서 20조원에 이르는 재정부담을 직·간접적으로 지게 되며,이러한 막대한 부담은 결국 차기 정권의 경제정책을 크게 제약할 것이다. 두번째 문제점은 지나치게 확대된 각종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될 것이다. 현 정권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안전망을 세운다는 명분하에 우리 수준에 걸맞지 않은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해 놓았다. 국민연금이 대폭으로 확대됐으며,기초생활보장법 또한 지나치게 관대하게 책정되어 근로의욕을 저하시킬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이러한 문제점이 가시화되지 않겠지만,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인구를 고려할 때 국민연금 및 의료보험재정 등은 언젠가 크게 손질을 보아야 할 소지가 많다. 특히 가까운 장래에 북한 주민의 대량 유입이 발생할 경우 현행 헌법상 정부는 이들 모두에게도 확대된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일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이는 현재 우리 경제 수준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될 것이다. 세번째는 현 정권이 추진했던 4대부문 개혁 중 '공공부문 개혁의 부진'은 현 정권의 약점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 등이 불발에 그칠 경우 현 정권은 민간부문의 개혁만을 강요했다는 비난을 두고두고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공기업의 근로자들은 노조와 언론의 힘을 빌려 버티기만 하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위험도 다분하다. 마지막으로,정경분리원칙을 주장하며 대북경협에 적극적이었던 현 정권은 결국 각종 대북사업에 국가가 개입하는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대북경협을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이끌어가게 될 것이며,특히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정부에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단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을 경우 차기 정권은 현 정권이 남긴 문제들을 마무리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현 정권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질 것이며,현 정권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결자해지(結者解之)' 정신으로 최대한 매듭지어야 한다. 물론 얼마 남지 않은 임기 안에 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공적자금의 회수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은행주식들을 적당한 시기 민간에 넘기고,계속하여 공기업의 민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또 적자가 발생하는 대북사업에서는 손을 떼야 한다. 아마도 김 대통령은 계속되는 정쟁과 주변 인물들의 각종 비리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을 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선에서 중립을 선포한 이상 정쟁에서는 마음을 비우고,궂은 일을 최대한 마무리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훗날 '경제위기를 제대로 극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또 후임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게 될 것이다. leedw104@yonsei.ac.kr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