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근교에 위치한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 건물. 세계 반부패 시민운동의 총 본산인 이 곳에 들어서면 '부패와의 전쟁'을 상징하는 각국의 포스터들이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남녀노소가 어깨동무를 하고 '반부패'를 외치는 박시백 화백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휘어진 시민들의 등에 정치인이 올라타고 있거나, 단두대의 칼로 '부패 정치인'의 목을 자르는 끔찍한 모습도 있다. 이들 포스터의 대부분은 '정치'가 부패의 주범임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TI의 페터 아이겐 회장은 "정치는 각종 부패의 근본원인"이라며 TI활동이 정치부패 척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겐 회장은 "정치인들은 죄가 명백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변명거리를 찾기 때문에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면서 "전세계 부패정치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달 미국 상원이 격렬한 논쟁 끝에 '고비용' 정치의 주범인 소프트머니를 폐지하는 법안을 가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법안은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정당에 '무제한' 기부할 수 있는 제도에 제동을 걸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애써온 시민단체 커먼코즈의 대표 스캇 하시바거씨는 "정경유착과 같은 우리 시스템의 가장 부패한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세계는 지금 부패한 정치자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 반부패국가연대'(GRECO)와 같은 범국가 조직에 TI나 커먼코즈 같은 민간단체가 합세, '오픈 시크리트'(open secret)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치자금의 완전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만이 은밀히 진행돼온 부패를 추방할 수 있다는게 그 요지다. 이제 시대구분을 예수가 탄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한 BC나 AD가 아니라 'AC(After Clean Money)'와 'BC(Before Clean Money)'로 나눠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알렉산더 세거 GRECO 법무담당 행정관은 "반부패에 대한 공감대가 전세계에 형성되고 있다"면서 "미국이 GRECO의 활동에 동참하는 등 정치자금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역설했다. 그 하나가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한 정치자금의 완전 공개다. 미국의 경우 미 연방선관위는 공직선거 후보자나 정당이 모금하거나 기부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공개토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권자들은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누가 어느 정당에 얼마를 기부했는지 손바닥 들여다 보듯 알 수 있다. 네덜란드도 5천유로 이상을 정치자금으로 낸 기업은 당 공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또 미국과 프랑스 등 일정규모 이상의 정치후원금에 대해서는 수표 사용을 의무화하고 정당에 대한 자금지원 한도를 줄여 나가고 있다. 프랑스는 법인이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베를린=김동욱 기자 워싱턴=윤기동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