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이름 있는 중견기업을 이끌면서 언더파를 치는 아마추어 골퍼가 있다. 주인공은 중소형 아파트 전문 건설업체인 동문건설(주)의 경재용 회장(51). 지난 91년 88CC 클럽챔피언을 지냈고 베스트스코어가 4언더파 68타일 정도로 그의 골프 실력은 프로급이다. 1986년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경 회장은 골프장에 한 번 나갔다가 골프에 푹 빠졌다. 푸른 잔디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침 저녁으로 연습장에서 실력을 닦아 입문 8개월 만에 '싱글'에 진입했다. 그의 골프 열정을 알 수 있는 일화 한 토막. 비기너 시절 한 번은 벙커에 빠져 몇 차례 실수를 거듭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남한강변의 백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모래밭으로 돌렸다. 그곳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벙커샷을 연습한 뒤 어둑어둑해서야 서울로 돌아왔다. 경 회장은 골프가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골프를 하려면 경제력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사업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 지나가는 캐디의 말 한마디가 사업 결정에 큰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경기도 파주 교하지구 1차사업을 성공리에 마친 뒤 주택경기 전망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2차사업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뉴코리아CC에서 골프를 치는데 전화가 왔다. 캐디가 휴대폰을 건네주다가 거기에 씌인 '동문건설'이라는 글자를 보고 "혹시 동문건설 사장님이세요?"하더니 대뜸 "교하지구 2차아파트는 언제 분양하세요?"라고 물었다. 캐디는 지난번 1차 때는 마감이 돼 아파트를 장만하지 못했는데 2차 때는 꼭 분양을 받겠다고 했다. 눈높이 아파트가 마음에 든다는 칭찬과 함께. 순간 경 회장은 "바로 이거다"하고 무릎을 쳤고 바로 회사로 돌아와 교하지구 2차 분양 준비에 몰입,대성공을 거뒀다. 라운드를 통해 잊지 못하는 일은 프로들도 하기 힘들다는 '노보기 플레이'를 두 차례나 한 것. 한 라운드에 이글 2개를 잡는 진기록도 설악프라자와 골드CC에서 세웠다. 무엇보다 가장 짜릿했던 기억은 96년 제일CC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과 내기골프를 했는데 그날 따라 계속 잃기만 하며 고전했다. 그런데 마지막 5개 홀을 남겨 두고 5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전세를 역전시킨 것. 경 회장은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탠스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라며 "인생에서도 첫 단추를 잘 꿰야 하듯이 골프에서 이것만 잘 해도 보기플레이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경 회장은 1주일에 2∼3회 라운드를 한다. 사업가치고는 자주 필드에 나가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최고경영자는 많은 시간을 일하기보다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