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차세대 영상이동통신)의 동기·비동기 서비스 방식을 놓고 한바탕 해프닝이 있었다. 양승택 정보통신부장관이 국회에서 서비스 표준에 선을 긋지 않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지난 한주동안 정통부는 이를 수습하느라고 바빴다. 양 장관이나 정통부는 사전에 이런 반응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양 장관이 동기식에 애착을 가졌다는 혐의(?)는 접어두고 어찌됐건 IMT-2000 관련 기존정책의 잘잘못을 일단 유보해 보자.이런 순수한 조건에서 양 장관의 발언을 음미해 보면 주목할 만한 대목이 하나 있다.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까지의 정부논리로 보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지만 그 자체로는 신선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시장환경이 갈수록 복잡하게 변하는데도 모든 것을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데서 시작됐다. 지금와서 보면 이번 일도 당초 표준의 구도를 정부가 결정하려는 데서부터 일이 꼬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지 않았던들 정부가 이렇게 운신하기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표준은 정치경제학적인 복잡한 게임이다. 정부가 밀면 유리하겠지만 시장이 외면하면 무용지물이다. 정부가 안 밀어도 시장이 수용하면 또 그만이다.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것이 시장에서 표준이 된다는 법도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표준자체가 아니라 이익창출이라면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성공과 실패,협력과 배신,양다리 걸치기는 늘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개방경제를 지향한다면 표준결정의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또 이제 표준은 그 자체를 뛰어넘는 기업의 고도의 전략적 카드다. 또 언제든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한 변신능력도 필요하다. 2세대니 3세대니 하지만 호환성을 토대로 이행할지 아니면 단절을 꾀할지,바로 3세대로 갈지 아니면 2.5세대와 같은 징검다리 표준으로 시간을 끌 것인지,또 타이밍은 언제로 할지 등 하나같이 상황의존적이고 어려운 선택문제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의 성질의 것이며,또 정부가 그럴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양 장관이 이런 한계를 인식했다면 그 의미가 적지않다. 어쩌면 보다 세련된 통신분야 산업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또는 내가 원하는 바가 있었는데 일부 기업들 때문에 잘못됐다. 이를 어떻게 수습하든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라면 어찌되나. 또 다른 혼선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