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발칸반도의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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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세계인의 이목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구(舊)유고전범재판소에 쏠려 있다.
예상대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대통령은 법정에서도 호전적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서방국가들의 부당한 간섭이 발칸내전의 원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이 발칸반도에 있는 여러 민족에게 민족주의를 조장했고,그래서 여러 민족이 화합하던 유고연방은 살육의 전쟁터로 빠졌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과 팽창주의를 추구했던 나치 독일의 경우처럼 영토와 민족이 결부된 민족주의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있다.
물론 발칸반도의 문제는 복잡하고 다소 모순된 측면도 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이 지역의 형세는 사실 민족과 영토가 한데 어우러진 민족주의에 의해 그려졌다.
서유럽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들의 자결권을 조장했다.
또 자신들을 대신해 서로 전쟁을 치르도록 강요했다.
세르비아인 알바니아인 보스니아인 등 발칸반도에서 기반을 두고 살던 다양한 민족들은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각기 팽창정책을 펼쳤다.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민족주의도 이런 점에서 과거의 발칸지역 민족주의와 유사한 점이 있다.
시간이 1900년대 초반이라면 밀로셰비치는 과거에 그러했듯이 외부의 든든한 지원자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바로 21세기라는 것이다.
밀로셰비치 이후의 유고연방은 사실상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철학교사 출신답게 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다.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진지치 총리는 인격형성기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지냈다.
'이성'과 '토론'에 기초한 휴머니즘과 사회발전을 강조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를 존경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서방의 '가치'에 익숙하다.
서방도 그의 개혁에 우호적이다.
그도 옛유고전범 처리 문제와 관련,서방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몇명의 전범으로 인해 대다수 세르비아인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또 신유고연방의 한 축인 몬테네그로 공화국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도 별로 개의치 않을 태세다.
진지치 총리는 서방이 소규모 민족주의를 혐오하고 있으므로 몬테네그로의 독립은 서방의 우려를 자아낼 것이라고 몬테네그로 독립주의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따라서 겨우 과반으로 얻어지는 불안정한 찬성으로 몬테네그로가 신유고연방에서 이탈하는 것은 서방국가들도 별로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몬테네그로 문제는 사실 서방에도 난제다.
99년 코소보 내전을 종식시킨 UN결의안은 코소보가 세르비아공화국의 일원이 아닌 유고연방의 일원이라고 언급했다.
몬테네그로의 독립으로 신유고연방이 사실상 세르비아공화국으로 전락한다면 코소보내 소수 알바니아계도 곧바로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코소보도 찢겨 나갈 것이다.
겨우 안정을 찾은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도 민족간의 분쟁으로 얼룩질 우려가 높다.
그러나 진지치 총리는 무력 사용을 극도로 배제하고 있다.
발칸반도가 지금은 여러 민족과 나라로 분할돼 있지만 종국적으론 유럽 단일생활권인 EU의 일원으로 참여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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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실린 'Zoran Djindjic and Balkan maps'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