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德根 < KDI 국제정책대학원 경제학 교수 / 미국변호사 > 2000년 2월부터 부과된 미국의 한국산 탄소강관 수입에 대한 세이프가드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지난 15일 최종적으로 WTO협정 위반 판정을 내렸다. WTO회원국간의 통상분쟁을 판정하는 최고기관인 상소기구에서 내린 이번 판결은 법리적으로 향후 세이프가드조치 운영에 관한 중요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조만간 부시 대통령의 결정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철강 세이프가드조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의 WTO 분쟁 승소는 우리에게는 반도체,스테인리스 철강분쟁에 이은 세번째 승소로서 상소기구에서는 최초로 승소한 WTO 분쟁이다. 1995년 WTO가 설립되고 이에 따라 대폭 개편된 분쟁해결제도가 마련된 이래 현재까지 2백40여건에 이르는 통상 분쟁이 제기되었다. 한국의 경우 현재까지 모두 11차례 피소됐으며,6차례에 걸쳐 다른 회원국을 제소한 바 있다. 피소된 사례 중 소주 주세에 관련된 분쟁과 수입쇠고기 구분판매제도에 관한 분쟁 등에서 패소하여 국내 제도가 수정된 것은 일반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인천공항 건설,먹는 샘물 수입제도,통신장비 조달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 정부의 조치 또는 제도가 WTO에 제소된 바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우리가 제소한 6차례의 분쟁 중 5건이 반덤핑에 관한 것이며,또한 필리핀을 상대로 한 1건을 제외하고는 5건이 모두 미국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WTO체제하의 분쟁해결제도를 통해 우리가 이제까지 제기해 온 부당한 무역장벽의 대부분이 미국의 반덤핑조치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피소당한 11건의 분쟁 중 6차례가 미국에 의한 것이라는 점 또한 우리 통상현실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이번 탄소강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다자간 통상규범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WTO 분쟁해결제도는 잔존하는 구조적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매우 효과적인 통상질서 유지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만성적으로 반복되는 통상마찰과 분쟁에 대처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통상의 주역인 기업 차원에서 신속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WTO의 다자간 협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는 다자간 통상규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여 WTO협정 하에서 보장된 권익이 침해되는 경우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한편 정부 차원에서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제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즉 민간기업의 청원이 있는 경우 구체적인 절차와 시한을 따라 우리정부가 기업을 대변하여 WTO에 제소하는 체제가 가동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체제를 통해 통상문제를 기타 비경제적인 요인으로부터 중립화하여 사회 정치 국제관계 등의 고려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물론 WTO에 통상분쟁을 더 많이 제소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교역상대국들도 국내의 복잡한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부당하고 비효율적인 조치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적극적인 WTO체제의 활용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우리가 제소한 WTO 분쟁에서 한 차례는 문제제기 단계에서 합의를 통해 사안을 종결지었으며,이후 두 차례의 분쟁에서는 패널 판정 이후에 상소를 제기하지 않고 판정을 이행한 점은 그러한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우리는 1967년 GATT에 가입한 이래 94년까지 약 2백90회에 걸쳐 해외시장에서 무역구제조치에 의해 수출이 제한되었으나 단 한 차례 GATT에 분쟁해결을 제소한 바 있다. WTO체제 출범 이후 대폭 신장된 우리의 통상분쟁 대처 능력을 바탕으로 나날이 치열해지는 통상문제 해결을 위해 WTO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 dahn@kdischool.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