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은 홍콩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새해맞이 축제를 위해 주요 건물들의 외벽에 매단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전등이 밤새도록 반짝였다. 새해의 행복을 기원하는 '쿵헤이팟초이(恭喜發財)' 문구도 곳곳에 내걸려 눈길을 끌었다. 나무마다 빨간 돈봉투인 '라이씨(利是)'가 장식되어 재화를 중시하는 홍콩인들의 정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최대 명절을 맞는 홍콩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최대 70%까지 할인해주는 '빅 세일(Big Sale)'이 펼쳐지고 있지만 거리의 상점들은 그렇게 붐비지 않았다. 경기가 나쁜 탓이다. 지난해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홍콩은 많은 업체들이 30%까지 인원을 감축했고 임금상승률이 마이너스 10%에 이를 정도로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았다. 지난 97년 국제공항의 기능을 첵랍콕에 넘겨주고 아파트 단지로 변신키로 했던 카이탁 공항이 거의 개발되지 못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된 모습에서 홍콩을 떠받치는 양대축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홍콩인들의 미래 걱정은 이보다는 '중국쇼크'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금융 물류등 홍콩의 주요 기능을 빼앗아 가는게 아니냐는 우려다. 기업들의 홍콩 탈출도 이어져 프랑스 알카텔은 2000년초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를 상하이로 옮겼고 MGE UPS는 북아시아 지역본부를 중국본토로 이전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필름업체 코닥,물류업체 DHL등도 지역본부를 선전이나 푸둥(浦東)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엔 모토로라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톈진(天津)으로 옮길 예정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금융인은 "향후 15년이내에 외국계 기업들이 대부분 본토로 옮겨갈 것이라는 루머마저 나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빅토리아 항구에서 바라본 석양은 왠지 쓸쓸해보였다. 한때 아시아의 중심으로 각광받던 홍콩의 조락(凋落)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본격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홍콩=정태웅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