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원조 이민화 메디슨 전 회장의 실패가 전통기업들의 실패와 얼마나 다르고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전 회장의 소위 '벤처연방'이 사업다각화라는 낡은 주제와는 얼마나 같고 다른 것인가 하는 질문도 해본다. 기업이 일어서고 망하는 데는 운명처럼 작용하는 냉엄한 철칙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업인이 경영보다는 정치를 추구하고 스스로가 자만한 경영학(學)의 전도사가 되기 시작하며 내연성장보다는 외연적 확장을 추구하게 된다면 필연코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것은 오랜 경험칙이다. 특히 자본시장이 피워내는 투기적 환상에 스스로를 함몰시켜 간다면 투기의 파고에 떼밀려 표류하고 마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의 천박한 기업관이 이민화류의 경영구조를 더 한층 강화하기도 했을 것이다. 연줄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는 말을 인적 네트워크(human network)라는 말로 바꾼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것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인적 네트워크로 따지자면 한탕주의 보물선의 이형택만한 네트워크도 없을 것이지만 기술의 벤처가 연줄의 벤처가 되고 말면 패스21 같은 벤처부패는 예외라기보다는 차라리 다반사가 된다. 대기업을 원죄시한 바탕 위에 소위 벤처강국 세우기를 도모한 것이 허망한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 경제참모의 한 사람이었던 김태동씨는 물적(物的) 청산에 나아가 인적(人的) 청산까지를 주장했었다.정권교체에 걸맞은 경제권력의 인위적인 개편에 벤처정책을 엮어넣었다면 의도부터 불순했던 셈이다. 기업인의 정치적 이력이 갈수록 길어진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된다. 이 전 회장은 메디슨의 회장일 뿐더러 APEC 기업자문위원이었고 중소기업특별위원,경제사회연구원 민간이사,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등의 직함을 차례차례 보태갔다. 심지어 정부 규제개혁위원에 사법개혁위원까지를 겸하고 있었으니 회사경영은 들여다볼 시간조차 부족했을 것이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인이 '증권시장의 투기적 환상'에 함몰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주가는 기업의 현재가치를 드러내는 것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기업의 가치와 주식의 가치는 또 너무도 자주 어긋난다.만일 이를 혼동·착각한다면 기업경영과 투기활동의 차이는 지극히 불투명해진다. 외환위기 이후엔 불행히도 이런 착각이 일반화됐다. 이 전 회장의 과도한 벤처투자는 결국 스스로를 가치창조자로부터 시세 편승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벤처인들이 서로가 상대기업의 주식을 매입해주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그 결과에 도취해 "나의 기업은 이렇게 커졌구나"라고 만족해 한다면 옛 이야기에 나오듯이 '밭 작물을 한뼘씩 뽑아놓고 작물을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 알묘조장( 苗助長)의 어리석음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뽑아놓은 작물들은 다음날이면 말라죽게 마련이다. 메디슨이 그렇게 죽었고 제2,제3의 메디슨이 줄지어 기다린다면 벤처를 키워보겠다고(조장하겠다고) 작심하고 있는 정책당국자들에게도 잘못이 크다. 벤처가 한국에서도 땅값이 비싼 테헤란로에서 출발했다는 것부터가 문제라 하겠지만 코스닥의 주가상승으로 벤처를 보상하고 투자자금을 회수하도록 하겠다는 당국자들의 위험천만한 조장정책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메디슨 케이스가 쌓여갈 뿐이다. 주가는 언제나 오를 수도 없고 증권시장은 당국자들의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또 언제나 합리적인 곳도 아니고 자주 궤도를 이탈한다. 이 전 회장은 결국 잘못된 정책과 부풀려진 거품,인위적으로 조장된 환상,사회적 과잉보상의 서글픈 희생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