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고탄생 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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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85)가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탈고한 건 1862년 6월이다.
그의 나이 60세, 쓰기 시작한 지 17년만이었다.
온갖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는 주인공 장발장을 통해 인간애와 자유수호 정신및 혁명 제정(帝政) 공화정으로 이어진 19세기 프랑스 사회상을 담아낸 이 작품은 출간 즉시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
''어떤가''라는 뜻으로 출판사에 보낸 편지 ''?''에 사장이 감탄사 ''!''로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발표된 뒤 지금까지 32회나 영화화됐고 뮤지컬은 런던과 뉴욕에서 12년째 연속공연중이다.
뿐만 아니라 장발장이 감옥에서 나온 툴롱,미리엘 신부의 은식기를 훔친 디뉴의 성당, 불쌍한 코제트를 구한 몽페르메이유의 테나르디에 여인숙, 마리우스를 업고 탈주한 파리의 하수도까지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 작품이 이토록 사랑받는 건 "인간의 불행을 없애고,빈곤을 추방하고,무지를 막기 위해 썼다"는 위고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까닭이다. 위고는 이 외에도 ''노트르담의 꼽추'' ''정관시집'' ''벌(罰)'' ''여러 세기의 전설'' 등 장편 10편, 시집 20권, 희곡 10권,논문집 5권 등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장수했고 생전에 충분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도 사랑하던 딸과 사위를 한꺼번에 잃었고,나폴레옹 3세의 제정 수립에 반대,50세부터 19년간이나 타국을 전전했다.
망명지 건지섬의 오트빌하우스 벽에 새겨진 ''희망은 나의 힘''''인생은 망명이다'' 등은 "인생엔 행복과 불행이 아닌 빛과 그늘이 있을 뿐"이라는 그의 생각이 오랜 인내와 열정의 산물임을 전한다.
위고 탄생 2백주년(2월26일)을 맞아 프랑스에선 전집 재출간등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초ㆍ중ㆍ고교의 올해 첫 수업을 일제히 위고 작품 암송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교육부가 과목에 관계없이 첫 시간엔 그의 작품을 가르치도록 당부했다는 것이다.
말과 글은 정신을 지배한다.
자국의 문호를 기림으로써 모국어와 자유수호 정신을 지키려는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부럽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