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고이즈미 독트린과 고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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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를 순방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을 ''고이즈미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고이즈미 독트린은 △일본 아세안 간의 포괄적 경제 제휴 △동아시아 확대공동체 결성 △동아시아 개발 이니셔티브 확보 △개혁지원·안정확보·미래협력 추진 등이 주요 내용이다.
연초부터 일본의 엔저 유도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동아시아 국가간의 통화마찰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가 이같은 대외정책을 발표한 것에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일본의 자구책이냐,아니면 동남아 국가들이 갈수록 중국과 긴밀해지고 있는 데 따른 위기의식이냐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 중에서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동아시아 경제 주도권 확보를 겨냥한 일본의 포석으로 고이즈미 독트린을 이해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작용해온 중국과 일본간의 관계는 지난해 말 중국이 일본의 전통적 경제동맹국인 동남아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것을 계기로 표면화됐다.
올 들어서는 엔저에 따른 통화마찰로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의 경제 주도권은 2000년을 고비로 중국에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중심축은 세계 최대 시장에서의 무역성과로 평가한다.
2000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뿐 아니라 일본이 우위를 지켰던 제3국 시장에까지 확산됐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유태계 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기채(起債)시장에서 만큼은 화교계 자금이 제1선 자금으로 부각된 지 오래다.
특이한 것은 화교계 자금을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미국기업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이 대부분 조달했다는 점이다.
엔화 자금과 같은 다른 자금에 비해 조달비용이 저렴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다국적 기업들이 화교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세계 최대 잠재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 진출''이라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해 11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확정된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반면 일본 경제는 경제성장 이론에서 가장 오명(汚名)으로 평가되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적용될 정도로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이 국제금융시장의 골칫거리로 등장하면서 IMF의 특별심사까지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더욱이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일본 경제의 자존심과 엔화가치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던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무역수지가 올 1·4분기에 적자로 돌아설지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다.
한때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을 꿈꿨고 무역흑자국의 상징이었던 일본이 악순환 국면에 몰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일본시장 잠식과 일본 내 제조업 공동화를 초래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중국 이전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위안화가 중국의 경제 여건에 비해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일본은 진단하고 있다.
중국은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지난 94년부터 유지해오고 있다.
문제는 중심환율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실질실효환율로 위안화의 적정 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6.8∼7.0위안으로 나온다.
이론적으로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는 ''이웃 궁핍화(窮乏化)정책''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어느 한 나라가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얻어지는 수출과 경제성장 측면의 이득은 경쟁국들의 희생에 다름아니라는 견해다.
현재 일본과 중국이 처한 여건을 감안하면 앞으로 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개방효과(open effect)가 커지면 커질수록 양국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서울에서 열린 ASEM 고베 프로젝트 회의는 동아시아의 금융 협력을 주도할 공동기구를 설립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 기구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공동화폐 도입 등의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보여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 지역 내 갈등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중간자''라는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이 지위를 잘 활용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 내의 각종 협력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켜야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싸움 과정에서 우려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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