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은 정보기술(IT) 업계에 '시련의 해'로 기록될 만하다. 자금줄이 끊기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고통은 더해만 갔다. 이런 와중에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벤처 거장'들은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량 기업을 키워 후배 경영진에게 대권을 물려준 아름다운 사례도 있었지만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하는 불명예를 경험한 이들도 많다. 화려한 삶을 접고 무대 뒤로 사라진 인물들을 돌아본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지난 1월 정문술 회장의 '아름다운 은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후진 양성과 전문 경영인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재를 털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3백억원을 쾌척한 것은 더욱 큰 감동을 줬다. 정 회장의 기부금은 최첨단 분야인 '바이오시스템공학과' 설립 비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성공한 경영자의 모델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염진섭 전 야후코리아 사장 =세계적인 포털 서비스 업체인 야후의 한국법인을 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염진섭 사장은 지난 4월말 일신상의 문제를 이유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야후코리아는 한시적으로 윤세웅 상무의 사장 직무대행 체제를 가동하다가 지난 6월 국제 마케터로 활동해 온 이승일씨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오상수 전 새롬기술 사장 =벤처 신화를 이끌었던 오 사장은 지난 11월 미국 투자법인인 다이얼패드커뮤니케이션스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새롬기술을 떠났다. 오 사장의 후임은 한윤석 부사장이 맡았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오 사장은 사재를 털어 다이얼패드에 1년치 운영자금(약 50억원)을 지원하고 미국법인의 회생에 전념할 계획이다. 공병호 전 코아정보시스템 사장 =지난해 3월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원 원장에서 벤처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공병호씨도 꿈을 접고 말았다. 지난 7월 소프트뱅크파이낸스코리아가 코아정보시스템 인수 방침을 확정하자 이 회사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진성 전 인츠닷컴 사장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진수를 보여줬던 이 사장 역시 지난 8월 경영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인츠닷컴은 지난 상반기 3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진성 사장 후임으로는 9%의 지분을 확보한 파이오니어캐피털의 박유정 이사가 취임했다. 홍윤성 전 네띠앙 사장 ='네티켓 전도사'로 활약했던 홍 사장은 지난 9월 물러났다. 지난 99년부터 인터넷 예절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수익모델 부재로 자금 압박을 받아 왔다. 후임은 공동대표인 전하진 사장이 물려 받았다.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 =네띠앙 홍 사장의 퇴진에 이어 '닷컴 전도사'인 전하진 전 사장도 네띠앙 경영에만 전념키로 하고 지난 9월 한컴 사장직을 사임했다. 한컴은 최승돈 상무의 대표이사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실적악화와 인터넷 투자 부문의 대규모 손실 등이 퇴진의 주된 요인이었다. 대주주(웨스트 애비뉴)까지 주식을 처분해 한컴은 현재 '주인 없는 회사'가 됐다.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 =벤처의 대부로 통했던 이 전 회장이 지난 10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85년 첨단 의료장비업체인 메디슨을 설립하고 96년 거래소에 상장해 시가총액을 한때 3조원대까지 끌어올렸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메디슨의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회장은 현재 경영전략 부문에만 주력하고 있다. 기타 =정현준 전 KDL 사장과 진승현 전 MCI코리아 사장, 이용호 전 삼애인더스 사장 등은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패가망신한 경우다. 이들은 작년 가을부터 수많은 게이트를 일으키며 아직까지 정치권의 '핵폭탄'급 이슈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벤처 CEO들은 전문경영인에게 바통을 넘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안솔루션 업체 이니텍은 올 2월 창업자인 권도균 사장이 현 대표이사인 김재근 사장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하며 스스로 이사직으로 물러났다. 대표적인 게임리그 업체로 부상한 배틀탑의 이강민 전 사장은 지난 9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면서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경영고문으로 물러났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