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소비자금융의 明과 暗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민의 혈세로 죽어가는 금융사들을 살려준 이유가 뭡니까.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라는 뜻 아닙니까.
금융사들이 기업대출은 외면한 채 '돈 되는' 개인대출에만 매달린다면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어디서 조달합니까"(C은행 P임원)
은행원 경력 23년째인 그는 요즘처럼 자신의 직업에 자괴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기업을 지원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뱅커'(Banker)로서의 인생은 끝난 게 아니냐는 푸념을 쏟아냈다.
그는 "은행은 이제 수익성을 쫓는 '금융사'일 뿐 공공성을 중시하는'금융기관'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지적처럼 은행들은 개인들에게 수백만원의 돈을 높은 금리에 빌려주는 이른바 '소비자금융'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신한금융지주회사는 프랑스계 금융그룹인 BNP파리바와 합작으로 소비자금융전문회사를 설립하겠다고 9일 밝혔다.
한미 국민 제일은행 등도 최근들어 고리(高利) 소액대출상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은행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응,신용금고들은 생존차원에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적극 판매하고 있다.
이들 금고의 대출금리는 연 60% 수준.제도권 금융사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더구나 지금은 사상초유의 저금리시대가 아닌가.
금융사들이 소비자금융 영업을 경쟁적으로 강화하면서 한국 금융시장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소비자금융부문의 이상과열 현상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기업의 주된 자금조달창구로서 금융사의 역할이 무뎌지고 있다.
특히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주역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말 현재 신용불량자수는 한달새 7만6천명이나 증가한 2백81만명에 달했다.
이는 올 3분기(6월∼9월)사이 늘어난 8천명보다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의 법칙(Say's law)'처럼 금융사들의 경쟁적인 소액대출영업이 혹시 개인들의 무분별한 급전 차입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 지 생각해볼 때다.
최철규 금융부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