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출신으로 도쿄에서 농산물 전문 무역업체를 꾸려 왔던 H사장.한국 농산물의 대일 판로 개척에 앞장서겠다며 발이 닿도록 일본 거래선을 만나고 다녔던 그가 최근 간판을 내렸다. 그가 성공의 꿈을 접은 배경은 한가지였다. 사업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산물 업무만 10년을 했던 그가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에 뛰어든 것은 1년 전.업무 노하우와 젊음,그리고 그동안 쌓은 신뢰가 든든한 자산이었다. 퇴직금을 털어 사무실을 내고 일본인 직원 2명도 채용했다. 판로개척을 위해 입술이 부르트도록 뛰어 다녔다. 덕분에 대형 유통업체들에도 점차 납품의 길이 열렸고 지난 7월에는 일본 최고 의 명성을 자랑하는 자스코와도 거래 관계가 맺어졌다. 그는 한국산 농산물이 일본시장에 충분히 먹혀들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기대가 깨지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자꾸 클레임이 발생해서였다. 상자 윗부분과 밑이 현격하게 차이나는 참외,시든 깻잎 등 약속과 다른 농산물로 인해 거래선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H사장이 사무실에 머무르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졌다. 한국에서 온 농산물 중 불량품을 솎아내고 다시 꾸리는 작업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주력사업이었던 김치도 그를 괴롭혔다. 한국업체들끼리의 가격 덤핑이 치열해지면서 납품단가는 미끄럼질쳤다. 두 손을 들게 된 그가 작성한 손익계산서에는 약 2천5백만엔의 적자 구멍이 나있었다. 한·일 경제현안을 거론할 때 무역역조 시정은 단골 이슈다. 정부와 기업들은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선 부품산업 육성,마케팅 강화 등 다각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H사장의 실패담은 하지만 한국상품이 대일 무역에서 고전하는 이유 중 기본적인 하나를 웅변해 준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뚫은 판로와 신뢰를 단기간에 잃어 버렸다. 무심코, 또는 성의부족으로 한국에서 실어낸 농산물들이 안겨준 억울한 피해다. 완전한 뒷마무리와 약속을 엄수하는 선진 상관행.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최소한의 룰에 불과한 이 잣대를 어기는 한 일본시장에서 H사장과 같은 기업인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