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는 9일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제4차 각료회의를 개최한다. 1999년 12월 시애틀에서 있었던 각료회의는 비정부단체(NGO)들의 소요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이러한 소요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주최국은 물론 이 기구의 주요국들은 의제선정과정에서부터 아주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는 개발도상국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지난 95년 이 기구가 출범할 때 개도국에 이미 적지 않은 우대조치를 해준 바 있다. 예를 들면 농업분야에 있어서 국내보조금 감축,수출보조금 감축,특별품목 예외인정,농업개발지원 허용 등이 그렇다.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화원칙에 있어서 개도국에 10년이라는 관세화 유예기간을 허용한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었다. 그러면 이번 회의에서 개도국들을 위한 배려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번 시애틀 소요사태 때 개도국들의 목소리가 높았다는 사실과 또 이 기구의 1백42개 회원국 중 4분의 3이상이 개도국임을 감안할 때 개도국들의 주장이 우루과이라운드 때보다 강화될 공산이 크다. 즉 뉴라운드에서 개도국들에 유예기간의 길이,관세인하의 폭,예외인정의 항목수 등에서 크게 배려해주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각료회의 선언문 2차 초안을 보면 새 의제중 투자·경쟁정책 분야에서 개도국의 반대입장을 감안,우선 일정 기간 협상요소를 검토한 뒤 본격 협상을 시작하는 2단계 접근법을 도입하고,협상 참여방식을 포함한 자세한 사항은 2단계에서 논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개도국의 입장을 염두에 두고 환경의제는 2년 뒤 제5차 각료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노동문제는 아예 논의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러한 개도국 배려 분위기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도 개도국의 일원임을 자처하면서 이러한 특별배려에 안주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세계 12대 무역국이고 GDP가 1만달러를 상회하는 국가로서(올해 말 우리나라 1인당 GDP가 1만2백달러로 추정됨) 개방과 개혁의 속도를 자발적으로 높여 나갈 것인가. 이번 도하 각료회의가 WTO 세계무역의 신질서를 모색하는 의의 이면엔 우리나라와 같은 상위 중진국들이 개도국 선진국 중 택일해야만 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WTO 규범 내에는 한 나라의 개도국 여부를 판단하는 합의된 기준은 없다. 대신 이른바 '자기선언'방식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번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때부터 줄곧 개도국임을 자처해왔으므로 각종 배려를 누려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96년 선진국들이 모여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개도국 단체인 G77로부터 탈퇴했다. 인구비례 자동차 보유대수,휴대전화 사용횟수,그리고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수준 등이 웬만한 선진국보다 앞선다. 비공식 기준이기는 하나 1인당 GDP 1만달러라는 '선진국 자격기준'을 올해 넘어서게 된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우리 국민과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다만 농업부문에서만은 우루과이라운드 당시보다 나아진 것이 별로 없어 취약부문으로 분리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에 대해 우리나라가 개도국 수준을 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견해다. 스스로 선진국임을 선언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점도 적지 않다. 서양속담에 '성공은 성공을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후진의 그늘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세계 일류국가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국민 긍지 제고와 경제적 사기진작이라는 효과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국가 신인도가 올라가게 된다. 금융위기 이후 BBB 수준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신인도가 상향조정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도국이라고 강변함으로써 얻어지는 혜택은 남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인 데 반해 선진국임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 돌아오는 혜택은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JHY@ewh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