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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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이름만 기록돼 전하는 신라의 음악 가운데 '회소곡(會蘇曲)'이라는 이름의 노래가 있다.
유리왕 때 6부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장장 한 달 동안 길쌈대회를 열게 한 뒤,8월 보름날 진편이 음식을 내고 춤추며 불렀다는 노래다.
양주동 박사의 고증에 따르면 '회소 회소'는 '마소 마소'의 이두식 표현인데 '이겼다고 너무 그리 뽐내지 마소'라는 후렴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승부에 구애없이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온갖 놀이를 즐기다가 밤 9시(乙夜)께 파했다는 이 '길쌈축제'를 '가위'라고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가위의 기원이다.
동기간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한가위란 명절이 처음에는 이렇듯 여성축제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퍽 흥미롭다.
신라초 여성은 그만큼 남녀평등을 누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교가 전래돼 가부장제도가 확립돼가면서 점차 여성은 남성의 뒷바라지역으로 퇴앵의 길을 걷는다.
여성은 제사모시기 시부모모시기 자녀양육 밥짓기 빨래하기 길쌈 등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이것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았다.
꽃다운 젊은 시절을 엄격한 법도에 눌려 항상 집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던 시집살이의 정신적 육체적 고됨은 오늘날 여성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여성 스스로 '전생에서 죄 많이 지은 자가 이승에 여자로 태어난다'고 체념했을까.
그래서 여간해선 친정에 갈 수 없는 며느리들을 위해 용인됐던 것이 한가위 전후의 '반보기(中路相逢)'풍습이다.
시집과 친정의 중간쯤에 있는 산이나 골짜기에서 어머니와 딸이 만나 장만해온 음식을 나누며 서로 안부를 묻는 야외상면 이었다.
조선조 여인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아직 주부들은 명절이면 음식을 장만하고 남성과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해야 한다.
그들에게 명절은 줄곧 일만해야 하는 '고통절'일 수밖에 없다.
한가위가 애당초 여성들의 축제였다는 사실을 되새겨 이번에는 남성들이 음식준비도 거들고 설거지는 아예 도맡아도 좋을성 싶다.
그래야 화목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