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땅을 처음 밟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눈을 의심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수도 도쿄의 도로 사정이다. 말이 세계 정상급 도시이지 길에서만은 도쿄가 서울을 따르지 못한다.넓은 길이라고 해봤자 왕복 6차선이 고작이다.도심 한복판은 차 한대가 빠져 나갈 만한 크기의 일방통행로가 많다.도로 형편이 이렇다 보니 강심장이 아니고는 자동차를 길에다 함부로 세워 놓지 못한다. 주차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집 근처 유료주차장을 이용할뿐 집 앞이라고 해서 차를 마냥 대놓는 법도 없다. 행정당국의 감시와 제재를 받을 뿐 아니라 이웃들로부터도 손가락질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카사카와 신주쿠는 도쿄에서도 손꼽히는 유흥가다. 밤이면 취객과 자동차 행렬로 불야성이다. 좁은 길이 자동차로 메워지다 보니 정체도 만만찮다. 길가에 불법주차를 하면 욕 먹기 딱 좋은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이따금 특이한 차량들이 행인의 눈길을 끈다. 번호판이 외(外)자로 시작되는 외교관 차량이다. 청색 바탕에 흰 글씨가 들어 있는 외교관 번호판은 대로변이건 좁은 뒷골목이건 심심찮게 목격된다. 그러나 이들 차량이 시선을 끄는 것은 모양이 독특해서가 아니다. 차량을 세워 놓은 위치 때문이다. 외교관 차량은 국가별 고유 번호가 따로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 소속은 숫자가 38과 48로 시작된다. 다른 나라 외교관 차량도 같은 숫자인 경우가 있지만 유흥가에서 밤늦은 시각에 주차장이 아닌 곳에 세워진 38,48차량을 목격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일본 공무원들이 단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눈감아 줄 뿐이다. 주일대사관의 한 간부는 "경시청이 위반차량 리스트를 통보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국익을 위해 외교관들이 밤늦게까지 일선을 뛰는 것은 격려와 위로를 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불법주차 차량이 국가 이미지를 깎아 내린다면 이는 분명 해악이다.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외교관들에게는 공무상 특권이 절대 필요하지만 주재국의 기초적 법규와 직결된 불법주차 특권은 있다 해도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