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어정쩡한 日 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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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저명한 외교평론가 오카모토 유키오씨는 테러사건에 대처하는 일본 외교를 이렇게 비판했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 조국을 향해 퍼부은 비난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그의 발언은 일본 외교에 품고 있는 불만을 드러낸 것과 같았다.
일본정부의 외교 브레인으로도 활약중인 그가 꼬집었듯이 테러사건 발생 후 일본이 국제사회에 보여준 행태는 한마디로 동(動)중 정(靜)이다.
미국의 보복을 지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구체적 프로그램은 내놓은 게 거의 없다.이번엔 걸프전쟁 때처럼 돈만 내고 몸을 뒤로 감추지 말라는 미국의 주문을 받아 놓고 있지만 평화헌법 등 현실적 한계를 이유로 행동은 주저하는 기세다.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두려워한 나머지 후방지원을 위한 신법을 검토한다지만 정치권에서조차 통일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식인과 언론은 걸프전 후유증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며 총리의 리더십 발휘를 촉구해도 그는 국제사회를 향한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있다.
한국 중국의 빗발치는 반대와 경고를 무시한 채 '얼굴 있는 외교'를 내세우며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던 지난 8월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얼굴이다.
경제라고 나을 것도 없다.
일본은 국제금융계로부터 불량채권 청소를 강력히 촉구받았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그러더니 테러사건으로 선진국 증시가 붕괴 공포에 휩싸인 지난 주말 대형 유통그룹'마이칼'을 전격 도산처리했다. 불량채권 처리에 박차를 가한다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지만 국제금융계가 일본의 큰 책임을 요구할 시점과 겹쳐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일본의 어정쩡한 자세는 금융완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유럽 중앙은행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당연한 결정이지만 내야 할 목소리를 앞장서 내는 대신 국제금융계의 급박한 상황에 떠밀린 느낌이 더 짙다.
오카모토씨는 "어항이 깨졌을 때 외부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금붕어는 모두 죽는다"며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국민의식을 질타했다.
일본,일본인이 국제사회를 위한 올바른 목소리를 제 때에 내는 것은 언제쯤일까.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