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는 미국경제를 흔들고 세계경제에 태풍을 몰고 왔다. 미국의 군사행동은 세계경제에 또 얼마나 큰 충격을 줄 것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세계증시와 외환시장이 동요하고 금값·원유가격이 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이 태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수급대책도,외환·증권·금융시장 불안을 최소화하는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충격을 줄이는 길은 기본을 다지는 것이다. 경제전쟁은 장기전이고,장기전에서 이기려면 기본체력이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츠버그에 추락한 여객기 안에서 승객들이 "우리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뭔가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가족에게 남기고 테러범에 저항했다는 보도를 듣는 순간,'공동 운명체'란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운명적으로 한 배에 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공동운명체로서 우리를 위협하는 상대와 제대로 싸우고 있으며,싸울 준비를 해왔는가를 물어야 한다. 무력전쟁이든 경제전쟁이든 대비하지 않으면 패배한다. 91년 걸프전에 승리한 후 미국은 힘의 우위를 과신하면서 안보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 더욱이 본토의 심장부가 공격을 당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를 당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건 유비무환을 말한 것이다. '문화에 발목잡힌 한국경제'(김은희 외)라는 책은 우리 사회에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들이 거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찬호 박세리 등이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자 '대한의 아들,대한의 딸'이라고 치켜세우지만,이들은 한국 밖에서 한국을 빛내고 우리의 자부심을 높여주었을 뿐,우리의 문제와 관계없는 사람들이다. 지역사회를 빛낸 인물도 대부분 그 지역에서 출생했거나 호적상 그 지역 출신이라는 것일 뿐,중앙에서 출세한 사람이어서 그 지역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해결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기 위해 어떤 대비를 하는가.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뛰는 전문직업인이나 영웅은 얼마나 있는가. 중국의 부상은 관리들이 뛰고 있는 데에 힘입고 있다. 외자담당 공무원은 외자유치 실적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우리 역시 공무원이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노사와 국민이 함께 뛰어야 한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면 아무래도 정치권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은 "정파와 지역을 넘어 국력을 모으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김 추기경이 무게 있게 한 것이다.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정치권이 잠시 정신차린 듯 했다. 위기감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계절,선거의 계절은 오고 있다. 내년의 지자체선거와 대선은 경제를 챙길 여유를 빼앗아갈 것이다. 더욱이 2003년 2월에 출범할 다음 대통령은 집권 1년 후에 치를 총선을 의식하는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를 위협하는 적(경쟁자)은 따로 있는데,우리끼리 사생결단을 내려는 싸움에 빠져들면 한국경제의 장기불황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누구에게든 책임을 묻기는 쉽다. 대통령과 장관은 물론 말단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둘러씌우는 일에 우리는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책임만 묻고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분석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만 바뀔 뿐 잘못이 되풀이된다. 한국축구팀이 지면 온 나라가 야단이고,이겨도 또 야단이다. 다른 점은 이기면 선수들 칭찬이고,지면 감독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아무리 출중한 감독이라도 선수들의 기량이 낮으면 어쩔 것인가. 축구 선진국과의 실력차이를 잊은 채 선수를 키우려는 장기계획도 없이 경기에 이기려고만 한다. 경제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경제실력을 과신하면 안 된다. 경제전쟁에서 이기려면 실력을 키울 장기계획이 필요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승객들이 목숨 걸고 테러범에 대항했던 것처럼 싸울 수밖에 없다. 세계가 온통 흔들리고 있을 때 남보다 더 빨리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이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일 수도 있다.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온다고 했던가.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