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우 < 우리기술 사장 dwkim@wooritg.com >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비행기가 부딪치며 화염이 치솟는 것을 본 순간 충격과 함께 퍼뜩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서재로 가서 찾은 기억 속의 책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었다. 내 눈은 밑줄이 그어진 한 문장에서 멈췄다. "문명간의 가장 격렬한 대립은 이슬람과 서구사회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특히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이슬람의 편협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할 것이다" 이어서 헌팅턴은 "이슬람과 서구 사이에는 준(準)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 준전쟁은 주로 테러와 공습의 대결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쓰고 있다. 이 테러의 주범으로 유명한 테러지도자가 거론된다. 미국은 피의 보복을 맹세하고 있다. 그 방식은 언론의 예상대로라면 '공습'이 될 것이다. 결국 이번 테러와 그에 대한 공습은 냉전 이후 계속되어 온 '서구와 이슬람간 준전쟁'의 연장인 셈이다.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대부분 반문명적 방식으로 일어난다. '테러와 공습'은 다른 문명을 향해 가하는 가장 손쉬운 폭력이다.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자는 그 문명권 안의 영웅이 되고 동조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다. 문명이란 이 경우 야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야만의 충돌'이다. 카메라는 허망하게 쓰러진 세계무역센터의 잔해 밑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또 비춰준다. 내 머리 속엔 거기에 다른 장면 하나가 겹쳐진다. TV에 방영됐던,어린 아들을 감싸안고 쏘지 말라고 외치다가 이스라엘 군인들의 무자비한 사격에 죽어가던 한 팔레스타인 아버지의 절망으로 가득찬 얼굴. 이번 사태의 어떤 당사자가 '서구의 오만과 이슬람의 편협함'같은 '야만'을 극복하고 인류의 '진정한 문명'을 만들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