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취임사가 이임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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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지만 오늘 국무회의가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4일 열린 주례 국무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김용채 건설교통부 장관의 인사말이다.
이날 회의에서 전 국무위원이 사표를 냈기 때문에 지난달 22일 임명된 김 장관은 사표가 수리될 경우 인사말이 곧 이임사가 되는 셈이다.
특히 건교부 장관직의 경우 오장섭 전 장관이 지난 3·26 개각에서 자민련 몫으로 전격 발탁된 이후 불과 5개월만에 물러났으며,후임인 김 장관도 국무회의에 얼굴만 내민후 또다시 경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장관수명은 바람앞 등잔불 같다'는 얘기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는 고질적인 병폐의 현장을 이날 국무회의가 재연한 셈이다.
문제는 내각의 잦은 교체는 행정공백으로 이어져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몽땅 돌아간다는 점이다.
사실 '8·15 평양대축전'파문이 터졌을 때만 해도 이같은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문제는 본질을 벗어나 정치지도자의 '자존심'게임으로 변질되면서 집권당과 청와대 수뇌부는 물론 내각이 총사퇴하는 우리 헌정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사태로 비화됐다.
이 과정에서 동남아 순방에 나섰던 정우택 해양수산부 장관이 당론을 받들어 장관업무를 팽개친 채 급거 귀국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정치 현안 때문에 외국에서 비웃음을 당하는 사태까지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 정치판을 자동차로 마주 달리다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지는 이른바 '치킨게임'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내각 일괄사임 소식을 접한 한 일선 공무원은 "이번에 또 장관이 교체되면 일선행정의 일관성이 잃게 되고 이는 곧 국민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며 답답한 심정을 표현했다.
수출에 이어 내수시장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지금 '치킨게임'을 할 때가 아니란 얘기다.
취임사가 이임사가 되는 정치적 후진구도에서 빨리 벗어나야 경제가 살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