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팜스프링스로 가다보면 리버사이드란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이곳엔 도료 부문에서 세계적인 벤처기업이 하나 있다. 듀라코트다. 이 회사는 각종 금속에 입히는 특수도료 기술을 개발해 세계적인 페인트 업체들에 공급한다. 미국의 BHP,일본의 스미토모 등이 이 회사의 기술을 도입해 쓴다. 이렇게 유명한 벤처기업의 회장이 한국인 교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명기(67) 회장이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다. 홍 회장은 지난주 총 1천만달러의 기부금을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내놨다. 한국계 젊은이를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기 위해서다. 그가 왜 이런 거금을 선뜻 내놨을까. 그 까닭을 알기 위해선 홍 회장의 경험을 한번 되짚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홍 회장은 1954년 문교부 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을 갔다. 캘리포니아대학(UCLA)에서 화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학비와 생활비에 무척 쪼들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그는 목장에서 일당 1달러를 받기로 하고 우유를 짜서 트럭에 싣는 일을 했다. 2주일간 고생 끝에 12달러의 보수를 받는 날,나르던 우유 한통을 쏟는 바람에 그는 6달러밖에 받지 못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렇지만 그는 6달러를 손에 쥐고 눈물을 훔치며 "언젠간 이 미국땅에서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이때부터 병원에서 음식나르기,땅파기,설거지 등 안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UCLA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위리커사의 금속코팅도료 연구부서에 들어갔다. 이 부서에서 22년간 열심히 연구해 첨단 강판도료인 코일코팅도료를 개발해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도료는 3억달러 어치나 팔려나갔다. 그럼에도 개발자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없었다. 연구실에서 함께 근무해온 절친한 친구가 사장이 됐는데도 그는 여전히 실장자리에 머물렀다. 결국 그는 벤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쌓아온 노하우를 토대로 신기술을 개발해 내놓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창업을 한 뒤 거의 반년간 단 한 개의 기술도 팔지 못했다. 미국회사들이 한결같이 등을 돌리는데 뜻밖에도 일본의 스미토모에서 첨단 기술을 감지하고 주문을 해왔다. 그러자 미국기업들도 일본에 뒤질세라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듀라코트는 코일코팅 및 알루미늄 익스트루션분야에선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섰다. 기술만 팔아서 연 1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첨단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듀라코트가 세계적인 기술업체로 자리잡자 홍 회장은 한국계 젊은이들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듀라코트에 한국출신 브레인들을 여럿 채용하는가 하면 모교인 UCLA 등에 매년 1만~2만 달러씩을 기부해왔다. 이번엔 장학재단도 만들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한국계 브레인들이 우유통을 쏟은 바람에 눈물을 흘리더라도 굳게 마음먹고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쏟은 우유 한통이 1천만달러짜리 장학재단을 만드는 기틀이 된 셈이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