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를 끌어오던 현대투신 외자유치 협상이 23일 타결됨에 따라 '외국계 증권사'로 재탄생할 현대증권과 현대투신이 시장에 어떤바람을 몰고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현대증권과 투신은 이제까지 해외 매각된 일부 증권,투신사들과 달리 각각140개, 100여개 지점망과 수천여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만만치않은 몸집의 증권, 투신사다. 따라서 증권,투신업계 관계자들은 'AIG -현대호'의 향후 움직임은 물론, 또 다른 외국계의 진출 및 이에 따른 업계판도재편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외환위기 이후 7번째 증권사 경영권 외국 이양 현대증권,투신이 이번 협상타결로 경영권을 AIG에 넘김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로 변신한 7번째 증권사가 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대유증권과 쌍용투자증권이 각각 홍콩 I-리젠트그룹과 H&Q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리젠트증권과 굿모닝증권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난 99년에는 서울증권의 대주주지분이 대림그룹에서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펀드에 매각했으며 이어 프루덴셜에셋매니지먼트가 한진투자증권의 대주주지분을 인수, 메리츠증권으로 바뀌었다. 또 지난해 1월 조흥은행이 조흥증권 지분 51%를 대만 쿠스그룹에 매각, KGI증권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으며 일은증권도 리젠트증권의 대주주에게 매각됐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아직까지 이들 외국계 증권사가 증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외형경쟁보다 수익성위주 경영에 주력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기대했던 선진적인 금융기법수용의 첨병노릇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젠트증권의 경우 외국계 대주주가 임명한 최고경영자가 불법문제로 물러나는가 하면 '진승현게이트'에 연관됐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했다. ◆ 투신업계 '외국계 태풍' 아직 미약 증권업종의 활발한 외국계 바람에 비하면 투신업계는 아직 외국계의 직접진출보다는 국내사와의 합작투자가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외국계가 단일 대주주로 있는 투신사는 템플턴투신운용과 굿모닝증권이 100%출자한 굿모닝투신운용 정도다. 그외에는 파리국립은행이 30%지분을 갖고 있는 동원BNP투신운용, 알리안츠가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을 비롯,외환코메르츠투신운용(코메르츠은행 45%), 주은투신운용(ING 30%),대신투신운용(스미토모생명 20%) 등에 외국계 지분이 들어와 있다. 이중 템플턴투신의 경우 설정잔고는 2조2천억원대로 중하위권 수준이다. 반면 이번에 매각된 현대투신운용은 설정잔고 17조원 규모로 삼성,대한,한국투신에 이어 업계 4위 규모의 회사란 점에서 업계판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가능성도 있다. ◆ 국내사 대응전략 아직은 유보적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계의 시장잠식을 우려하면서도 이번 현대증권-투신 일괄매각에도 불구, 아직까지 외국계 증권,투신사의 진출에 대해 직접적인 불안감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의 이같은 반응은 그간 외국계에 인수된 증권사들이 아직까지 기존 영업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체 분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너도나도 '투자은행화'를 부르짖고는 있지만 협소한 시장에서 뚜렷한 대체 수익원과 발전방향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현대증권-투신은 양사를 합하면 2위권과 큰 차이로 국내 최대 증권 및 투신영업망을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 공격적인 소매영업에 나설 경우 대응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형 S증권사 법인영업 관계자는 "AIG의 경우 기존 외국증권사 지점들과 달리 보험부문에서 큰 회사이고 연기금펀드 등과 컨소시엄을 형성해 투자차원에서 인수한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당분간 기존 영업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설 중개전문증권사 고위관계자도 "대주주가 어떤 경영방침을 펼칠지는 최종계약이 체결되고 새 경영진이 등장한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행보를 좀더 지켜본 후 대응전략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개영업과 달리 국내 증권사들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는 취약한 기업금융 및 금융상품 부문에서는 향후 국내금융시장에서 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가 선진국 투신사의 간접투자상품판매나 자산관리서비스, 기업M&A 및 해외증권발행 등에서 국내사보다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 증권.투신 해외매각 지속 전망 현대그룹위기로 시작된 현대투신-증권 매각으로 이미 증권영업시장의 상당분을 외국계가 차지하게 됐지만 앞으로도 외국투자자의 증권.투신 M&A와 이에 따른 판도변화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증권영업에 관심이 가장 많은 것막?관측되고 있는 곳은 메릴린치. 메릴린치는 이미 연초부터 D증권을 인수, 국내 소매영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었고 최근에는 R증권사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증권업계에 마지막 남은 '빅딜'인 대우증권의 해외매각도 관심사다. 대우증권의 경우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공식적으로는 매각방침을 밝혀온데다 이미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를 인수한 주체는 투자회사나 펀드가 대부분이어서 선진금융기법 전수 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며 " 증권영업시장의 진정한 빅뱅은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국내 증권사 인수를 통해 시장에 진입할 때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