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기아자동차 새 CEO(최고경영자)로 임명된 김뇌명(金賴明.59) 사장은 우선 이름이 특이하다.


그 자신도 발음하기가 쉽지않다고 하는 정도이니 한번만 만나도 상대방은 어김없이 기억한다고 한다.


사실 김 사장의 이름은 일본식으로 작명된 것이다.


그는 42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당시 김 사장의 부친이 일본어 발음 운율에 맞춰 "뇌(賴)"자를 선택했다.


광복후 부친의 고향인 경남 밀양으로 돌아왔을 때 일본에서 이미 호적이 모두 이첩돼 있어 이름을 고칠 기회가 없었다.


처음에는 한자음대로 "뢰명"으로 읽었으나 고교 3년때 담임선생이 두음법칙에 맞춰 뇌명으로 부르면서 그렇게 굳어졌다.


발음 때문에 외국인을 만날 때는 로이(Roy) 또는 노이(Noi)로 소개한다.


김 사장은 이름만큼이나 현대자동차 입사과정도 남달랐다.


대학졸업(서울대 경영학과)을 앞둔 69년 8월 미리 직장을 구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현대차 총무부를 찾는다.


우수한 인재가 왔으니 조기취업을 시켜달라는 것.


하지만 당시 총무부장은 하반기 정기공채를 통한 입사를 권유하며 점잖게 거절했다.


오기가 발동한 김 사장은 중소 화학섬유업체에 근무하면서 현대그룹 공채시험일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1,2,3지망을 모두 현대차로 적어냈다.


대부분의 입사동기들은 잘 나가던 현대건설을 우선 지망했지만 김 사장은 끝까지 현대차를 고집했다.


그는 영업지원 부서를 거쳐 곧바로 현대차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포니 프로젝트'팀에 차출됐다.


팀의 급선무는 국산모델 1호인 '포니' 생산공장을 짓기 위한 차관 도입 승인 건이었다.


당시 대리였던 김 사장은 변변한 수요전망 분석 데이터 하나없이 경제기획원에 제출할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


당시 연간 3천대 가량을 생산하던 현대차가 연산 4만대 규모의 포니생산라인을 만들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산업 발전사 등을 참고로 해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게 급상승 곡선형의 '국내 자동차 수요 예측도'였다.


이 예측도를 들고 기획원을 찾았을 때 담당자는 복잡한 숫자나열에 대충 훑어보고는 "우리도 이 정도는 다 알고 있다"며 짜증스러운 반응과 함께 사업계획서를 접수해줬다.


김 사장은 물론 당시에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업계획서였다.


김 사장은 당시 주먹구구식으로 짜맞춘 수요예측이 결국 맞아 떨어진 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사장은 입사 후 국내영업과 기획실에서 5년간 근무한 것을 빼고는 30년 가까이 해외사업 부서에서 잔뼈가 굵었다.


사내 영어시험에서 항상 1등을 차지할 정도의 유창한 영어회화 실력을 자랑하는 김 사장은 현대차의 해외시장 개척 역사와 함께 한 산증인이다.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앞뒤 가리지 않는 저돌형이지만 집에 있을 때는 소파에 묻혀 책을 보거나 명상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본인 표현대로라면 '카우치포테이토(couch photato:소파에 누워 감자스낵을 먹으며 TV 등을 보며 소일하는 것)'다.


계동사옥 근무시절에는 토요일 일과가 끝나기 바쁘게 가볍게 우동이나 칼국수로 점심을 떼우고 김양수 사장(현재 인도법인 대표)과 장충공원내 테니스 코트로 달려갔다.


한번 라켓을 잡으면 3~4시간씩 땀을 흘린다.


해외출장 때는 조깅화를 챙겨갈 정도로 달리기를 즐겼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안좋아 담배는 전혀 피우지 못한다.


주량은 폭탄주 3잔까지 가능하다.


취기가 돌면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는다.


최신 유행곡은 모르지만 20~30년 전 노래는 거의 소화할 정도로 '뽕짝'에는 일가견이 있다.


골프는 핸디캡22 정도.


비기너 수준이지만 1백타는 절대 넘기지 않는다.


임원이 된 후에도 골프에는 크게 취미가 없었던 때문이다.


김 사장은 직장생활 동안 '튀는 승진'을 경험하지 못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는 게 자신의 인사 평가다.


이미 최고경영자를 거친 후배들이 많지만 "그들이 빨랐지 내가 늦은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승진에 조바심을 내는 후배들을 대할 때마다 '조진조퇴,지진지퇴(早進早退,遲進遲退)'를 말하며 묵묵히 주어진 일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우리 나이로 60세인 김 사장의 대학동기들은 이제 거의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아직 현업에서 뛰고 있는 대학동기는 외환은행 부행장인 이연수 이수신씨 정도다.


회사가 자신에게 '마지막 봉사기회를 줬다'고 말하는 김 사장은 30년 해외시장 개척 노하우를 살려 수출을 통한 기아차의 르네상스를 열어갈 계획을 설계하고 있다.


강력한 추진력이 트레이드 마크인 김사장의 기아차 드라이빙 솜씨가 기대된다.


김상철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