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관용이 부족한 사회 ..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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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더라도 지금 우리사회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상대편에게 막말을 하며 달려드는 등,안티문화와 엽기문화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이 사태는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시작된 이래 촉발됐다.
작년에는 의료파업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더니 금년에는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로 내내 시끄럽다.
이번에 신문사 사주들이 구속됨으로써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백가쟁명이 필요하다.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고 그 모두가 용광로 속에 융합돼 하나의 목소리로 전환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 갈망해 마지않는 '다수로부터 하나(e pluribus unum)'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상태이다.
격론과 말싸움이 일어났다고 하여 당장 사회통합이 깨질 것처럼 수선을 떠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쟁점이 있을 때는 찬반 양론이 활발하게 개진돼야지,무조건 목소리를 낮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조용하기만을 원한다면 공동묘지가 제격이다.
하지만 공동묘지는 사람 사는 데가 아니며,사람 사는 곳이면 시끄러운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논쟁 속에는 우려할 만한 것이 있다.
자신의 입장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마녀나 사문난적으로 몰아세우려는 경향이다.
그 결과 천박한 육두문자가 난무하고,최소한의 예의어법인 양비론이나 양시론도 사라졌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다원주의 사회는 꽃필 수 없다.
자연의 세계가 아름다운 것도 다양성과 관용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장미가 자신과 다르다고 하여 철쭉의 존재이유를 문제삼은 적이 있는가-.또 벚꽃의 화사한 미가 있다고 하여 민들레의 소박한 미가 바래지는 것도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관용의 덕목을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아집과 독선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직자나 정치인들도 툭하면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쓴 말'을 들으면 자신의 부덕함부터 반성해야 할 입장인데,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고 하여,법원에 제소한다면 언제 도량을 넓힐 것인가.
또 종교단체의 비리에 대해 비판을 하게 되면 그 날로 비판자는 피신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하기야 '악마의 시'를 쓴 루시디도 이슬람 모욕죄로 사형언도를 받고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책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민단체들도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야속하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우리 시민단체들은 유달리 연대를 좋아한다.
따로 따로 자신들의 색깔과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 좋을 텐데,목표가 서로 다른 시민단체들이 '연대'란 이름으로 하나가 돼 일사불란한 행동을 하는 것은 획일적인 태도다. 시민단체들은 흔히 도덕성을 내세우나,도덕성만이 능사가 아니다. 다양성의 가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용이란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고 진리 접근의 특권의식을 버릴 때 가능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관용적인 집단이라면 정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한마디 했을 때 '아니오'라고 하는 장관이나 관료,여당 중진들이 있던가.
또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만 하면 기득권세력이나 반개혁세력으로 낙인찍혀 망신을 당하니,웬만한 용기로는 말도 못한다.
'개혁'이라는 개념은 주술처럼 주눅들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나보다.
물론 정부는 정책결정과 집행의 주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정책이 성역의 대상은 아니다.
특히 정부가 자신만만하게 추진하던 대북 포용정책이나 의약분업,교육개혁 등이 실패에 이른 사태에 접하면서 누가 플라톤의 '철인왕'처럼 무오류성을 자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정부가 쓴 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언론사 사주들의 구속을 강행한 정부가 '개혁적인 정부'보다 '불관용의 정부'의 모습으로 비쳐질까봐 걱정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