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없었다. GM과 포드라면 세계자동차 업계의 1,2위를 다투는 거인들이었지만 우리측은 전략수립은 커녕 전술구사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실력차는 백일하에 드러났고 대우차 매각은 지금까지도 표류하고 있다. 나중에는 매각 주도권을 둘러싸고 암투까지 생겨났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적지않은 떡고물도 떨어질 판이었다. 부패한 자는 없었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자들은 넘쳐났다. 99년 8월의 워크아웃으로부터 2000년 10월의 법정관리까지 14개월이 걸렸다.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는 자들이 빠지는 함정,즉 자중지란만 생길 뿐이었다. 포드가 인수포기를 선언한 다음에는 책임문제까지 불거졌다. 결국 대우 문제에 관여했던 고위인사들은 대부분 교체됐다. 한창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책임자를 바꾸는 일도 흔했다. 그것은 이 시각 현대투신 외자유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말 진지하게 대우 문제에 임한 사람은 적어도 취재팀의 판단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GM에서 터진 노사분규가 대우차와의 합작을 무산시켰듯이 포드의 타이어 리콜 사건은 어느날 갑작스레 대우차 매각의 최대 장애물로 떠올랐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김우중 회장은 이미 99년 10월 중국출장을 끝으로 강제 퇴장당한 터였다. 이제 객이 나설 차례였지만 주인만한 객이 없는 법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중국에서 "당분간 서울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국민의 정부 고위인사였다. 이 전화가 사전논의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취재팀이 알아내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배려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취재팀은 보고 있다. 어떻든 김 회장은 지금껏 도피자가 되어 있다. 김 회장이 유럽을 전전하는 동안 대우차도 주인의 처지를 닮아갔다. 한 때의 강력한 인수자 포드는 어이없게도 중도하차했고 GM은 '지구전'으로 들어갔다. 허둥댄 2년이었다. GM 단독응찰이 국제입찰로 뒤집어지고 포드가 떠난 다음 다시 GM을 붙들어야 하는 혼선이 있었다. 우리는 2000년 9월 어느날 새벽 미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요란한 전화벨 소리로부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우차는 과연 어떤 운명의 길을 갈 것인가.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