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의 국민주택기금을 대출받아 공사는 하지 않고 회사를 부도낸 뒤 돈을 가로챈 혐의로 10여명의 건설업자들이 구속된 사건은 국민주택기금 운용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란 점에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선 은행창구의 도덕적 해이와 지방자치단체의 무책임한 행정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건교부도 결코 책임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주택기금은 지난 81년 주택건설촉진법을 근거로 조성돼 현재 규모가 42조원에 이르고 올해 운용계획만 19조원이 넘는 거대한 공공기금이다. 건교부가 기금의 조성·운용·관리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했는데도 기존의 이해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아직까지 과거방식을 고집해 온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선 국민주택기금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정부가 해마다 주택공급 물량을 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설업체들을 닦달하는 수단으로 기금을 동원하는 형식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분양가 자율화로 기금의 자금줄이던 중대형 아파트 채권입찰제가 폐지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금의 역할은 저소득층의 주거환경개선,전세자금지원,공공임대주택 건설로 국한해야 한다고 본다. 더구나 조성금리가 갈수록 높아져 해마다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기금에서 중대형 아파트 건설사업에 저리자금을 대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기금 지원대상을 축소하고 동시에 기금조성을 위해 강제 소화시켜온 제1종 국민주택채권을 없애 기금조성 규모를 축소하는 게 당연하다. 국민주택기금 운용도 건설업체에 대한 기금대출을 없애고 대신 실수요자인 입주예정자에게 직접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기금대출을 위해 정치권이 청탁을 하는가 하면 낮은 금리로 기금을 대출받은 일부 건설업체들이 돈놀이를 하는 등 크고 작은 비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96년 이후 건설경기가 침체되자 건설업체들이 줄지어 쓰러지는 바람에 거액의 기금대출이 부실화됐다. 그런데도 운용방식을 고치지 않고 있다가 급기야 이번처럼 거액을 사기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동안 기금관리를 전담해온 주택은행 대신 위탁관리자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좋다. 다만 이를 핑계로 건교부 산하에 전담기관을 만들려는 생각은 기금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교부는 부처이기주의를 버리고 달라진 경제 사회 여건에 걸맞은 국민주택기금의 역할 재정립과 효율적인 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