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은원(恩怨)관계가 없을 수 없다. 김우중 회장의 대우와 잭 스미스의 GM은 30년에 이른 오랜 합작과 결별, 대립과 화해의 만나고 헤어짐을 되풀이하면서 겹겹이 애증(愛憎)을 쌓아온 특별한 사이다. '애증'은 복잡하고도 내밀한 역사를 담고 있다. 대우차 인수단 책임자로 활약하고 있는 앨런 패리튼씨만 하더라도 김 회장과 호형호제할 정도였고 그의 사무실은 오랫동안 김 회장 바로 옆방이었다. 더욱이 대우는 GM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김 회장의 대우가 그린필드에서의 창업보다는 다른 기업의 인수와 합병(M&A)을 통해 성장했듯이 GM그룹도 스스로 창업한 회사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GM의 역사를 "인수합병의 1백년"이라고도 부르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캐딜락, 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시보레 등은 모두 한때는 경쟁자였으나 차례차례 GM에 인수당한 기업들의 이름이다. 이 긴 명단의 끝에 마쓰다, 사브 등이 새로 추가됐고 이제 한국의 대우자동차가 막 포함되려는 순간에 와 있다. 우리는 오늘 한국에서조차 아주 조그만 회사였던 대우자동차가 세계자동차 업계의 최강자 GM에 정면승부를 걸었던, 그리고 한때는 이겼으나 끝내는 바로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인도해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72년으로까지 거슬러 가는 대우와 GM의 오랜 협력관계는 김 회장이 세계경영의 깃발을 내걸면서 결별과 파국의 수순으로 치달아갔다. 세계경영의 핵심이 다름아닌 자동차였기 때문에 대우와 GM의 대립은 필연적이었다. GM이 대우자동차에서 철수한 것은 지난 92년10월29일. 그로부터 불과 3년을 다 채우지 못한 95년8월, 대우는 동구권 폴란드에서 거인 GM과 정면 충돌하게 된다. 이미 때이른 92년에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했고 영국 워딩기술연구소를 인수(94년)한 김 회장이 내처 인도와 중국에서 자동차와 버스공장의 준공 테이프를 끊은 다음이었다. GM은 지금 대우차에 대해 그러하듯이 무려 5년 동안이나 폴란드의 국영자동차회사(FSO)와 매각협상을 벌였었다. 공장은 점차 누더기처럼 피폐해갔고 폴란드사람들은 이 협상을 'FSO의 자살 게임'이라고 불렀다. 이때 유라시아 진군의 화려한 대미를 폴란드에서 장식하고자 했던 김 회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FSO를 "자살"로부터 건져올렸다. 오늘의 장면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고도 빈에서 시작된다. [ 특별취재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