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56) 보오미거울 사장은 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화의종결 확인서를 받아들곤 눈물을 삼킨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3년간은 극심한 질곡의 날들이었다. 1998년 1월 77억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부도를 낸 뒤 꼭 3년만에 60억원이란 엄청난 빚을 갚아냈던 것이다. 말이 60억원이지 종업원 70여명의 조그마한 기업이 어떻게 연간 20억원씩 빚을 갚아낼 수 있었을까. 서울지법 민사3부(판사 김남태)는 4백35%에 이르던 부채비율을 1백20%로 끌어내린 경영 성과를 감안해 중소기업으로선 보기 드물게 3년만에 '자유'를 선언해준 것이다. 이 사장은 부도가 나던 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첫째 자살하는 것,둘째 해외로 도망치는 것,셋째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장은 이 세가지 방법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지난 30년간 오직 거울 만드는 일만 해왔는데 죽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 부도가 나자 그는 속옷 다섯 벌과 트레이닝복 한 벌을 가방에 챙긴 뒤 파주에 있는 공장 숙직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어음 부도여서 철창 신세를 면한 그는 이날부터 숙직실에서 1년간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그가 도망치지 않고 공장 숙직실에서 회사 살리기에 앞장서자 채권자들도 더 이상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 98년 7월 화의를 확보한 이 사장은 77억원에 이르는 돈을 어떻게 갚아내야 할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먼저 그가 모아둔 개인 재산을 모두 털어 빚부터 갚았다. 강원 홍천 땅 1만평과 자식 명의의 청주 상가를 팔아 약 20억원의 빚을 갚았다. 그래도 40억원의 빚을 더 갚아야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더욱이 건설경기 침체로 국내에서 거울을 팔아 성공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이런 역경에서 오히려 역공법을 썼다. 빚을 갚기 위해 시설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그가 신규 설비투자를 하는 것을 보고 직원들까지 '미쳤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았다. 빚도 못 갚는 주제에 신규 투자란 건 말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장은 보오미가 다시 살아남기 위해선 '수출'밖에 길이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위해선 신규설비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8억원 어치의 설비를 들여왔다. 이 사장의 이런 고집이 미국 JS글래스와 일본 사사야마 등에서 수출 주문이 들어오게 하는 발단이 됐다. 이 회사는 올들어서만 해도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3백만달러 어치의 특수거울 주문을 받았다. 이로 인해 부채비율이 연말까진 1백%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보오미는 화의 종결을 받은 덕택에 금융 거래가 정상화돼 선하증권만 받아도 수출 대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적색 거래업체가 3년만에 우수 신용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난 3년간의 피눈물을 말끔히 씻어낸 보오미거울엔 이제 환한 빛이 비치고 있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