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5일 근무제'가 이른 이유 .. 박영범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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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범 < 한성대 노동경제학 교수 >
정부는 최근 법정근로시간을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가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을 찬성하고 있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근로자들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으니 근로시간 단축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하는 방향인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에는 신중해야 한다.
노동절의 기원이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미국노동자 투쟁의 역사에 있듯이 노동계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납득할 만한 구체적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늘어나는 무역흑자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시행했고,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실업문제 해소를 위해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졌다.
IMF 위기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실업대란을 맞아 일자리 창출의 한 방안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으나 결론을 맺지 못했다.
OECD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임금억제 조치를 동반하지 않은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창출에 미미한 효과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노사정위에서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기본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실업대란의 극복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한 상황에서 노·사·정간의 협조체계를 굳건히 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강경노선을 걷고 있던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복귀시키고,정부와 대화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입장을 강화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다.
대형사업장에 조직기반을 둔 민주노총에는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조직원의 임금인상을 의미하므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한국노총보다 민주노총이 더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현시점에서 정부주도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가장 큰 명분은 휴일이 늘어남에 따라 문화 관광 레저관련 소비가 늘어나서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내수진작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면 그와 같은 긍정적 효과는 미미하다.
근로시간의 단축이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노동력의 사용에 있어서 양보다 질을 위주로 하는 기업혁신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이 생산성 증대를 수반하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며,외국의 예는 그렇지 못할 경우 노동비용의 증가만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복잡한 휴일제도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한 노사간의 이견이 자율적으로 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개별사업장에 강제할 때 과연 정부가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혹자는 지난 89년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이 고용창출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나,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매우 다르다.
당시 우리나라는 3저(低)등 대외경제 여건이 좋은 상황이었으나,IMF위기의 파고를 막 넘은 현재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불안으로 우리 경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주48시간에서 주44시간으로 단축하는 것(89년의 경우)과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40시간으로의 단축은 주5일 근무제를 의미하므로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결론적으로 현시점에서 정부주도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입에 따른 경제 및 사회적 효과를 분석하고,이를 토대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노·사·정간의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ybpark@webmail.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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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