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침체 우려가 커지자 '경기부양론'대'구조조정론'간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작년 하반기 제2 위기설까지 나돌 정도로 경기가 나빠질 때 '이는 지난 1998년 이자율을 너무 빨리 내려 99년 경제는 10%의 고도성장을 보였지만 부실을 제대로 수술하지 않고 넘어온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제 한국경제의 체질이 바뀌었고 해외 여건도 바뀌어 '적정성장률'이 위기 이전보다 낮아졌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한국경제는 10%에 육박하는 고성장은 '옛날 이야기'이며,5% 아니 그 아래서 맴도는 저성장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필자의 관심은 전통적인 단기 거시적 경제정책이 아니라 미시적 경제정책에 있다. 이를 보다 압축하면 기술혁신 투자와 관련 정책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을 말할 땐 흔히 수출, 1인당소득, 환율, 이자율, 국제수지 등의 거시적 지표들을 중심으로 논의됐다. 이런 거시적 성장의 밑에는 한국기업들의 비약적인 기술혁신 능력 제고가 깔려 있다. 90년대 한국은 국민소득 대비 연구개발 투자를 2.5% 넘게 유지하여 세계 3위 이내의 높은 비율을 유지해 왔고,그 성과는 취득한 미국특허수의 증가율면에서 세계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98년에는 그동안 취득한 미국특허수 면에서 한국을 훨씬 앞서온 대만보다 더 많은 미국특허를 취득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떤 거시정책을 펴서 빠른 국민소득 증가를 달성했는가보다 어떻게 많은 부문에서 선진국기업과 경쟁할 만큼 빠른 기술혁신 능력을 달성했는가'이다. 한국기업의 기술혁신 투자는 지난 97년 IMF위기 직후 대폭 축소됐으며,취득한 미국특허수는 다시 대만 밑으로 떨어졌었는데 이제야 겨우 회복되고 있다. 수출 감소 등 최근의 경제 부진은 지난 수년간의 기술개발 투자 축소에 영향받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힘을 쏟기보다 저성장을 감수하면서 기술개발 투자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본다. 위기 이후 많은 기술 인재들이 대기업을 떠나 중소벤처에 들어갔다. 이에 힘입어 기술개발력이 크게 향상돼 경쟁력이 높아진 우수 중소기업들이 많다. 이제 이들의 문제는 대량생산에 필요한 자금조달 및 마케팅 비용과 경험 부족이다. 이런 것들은 정부개입이 정당화되는 사전적 의미의 '시장실패'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이런 부문에 정부의 자원이 투입되는 것은 그런 논리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전통적 거시적 경기부양에 대비한 '미시적 경기 부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미시적 경기부양책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필요한 곳에 유연하게 집행할 수 있는 재원과 그 용도가 예산에 미리 책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바로 정부가 경제정책의 중심 기조를 바꾸려는 장기비전을 갖고,이런 예산을 확대 배정하는 체계적인 사전 노력과 조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위기 극복 단계를 넘은 한국경제는 단기적 경기부양 논쟁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성장 원천을 바꾸려는 비전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만 오면 어머니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걱정되어 우는 청개구리'처럼,반도체 가격이나 유가의 자그마한 변동에 일희일비하는 취약한 한국경제 구조로부터의 탈피가 가능하다. 과거의 성장논리가 제조업 대기업에 의한 비용우위에 기초한 성장이었다면,이제는 좀더 다양하게 비제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가치창조에 의한 성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30대 기업집단이 부가가치,고용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말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고,그이후 탈 대기업 러시와 중소벤처의 등장은 한국경제 체질 개편의 가장 확실한 조짐이었다. 이것이 단순한 조짐으로 끝나 또 하나의 좌절로 고착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는 새로운 성장 원천 창출이라는 비전을 확실히 천명하고,정부의 중장기 경제정책과 자원 배분에 이 비전을 체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kenneth@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