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미사일 방어망과 전략핵의 연계 협상에 합의함으로써 최대의 국제 안보 현안인 미사일 방어 문제에 돌파구가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사일 방어 협상이 '커다란 진전'을 볼 것으로 기대한 군사전문가는 거의 없었으나 두 정상은 이날 8개국(G-8) 정상회담이 끝난 후 별도로 만나 까다로운 문제에서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주위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공격용 전략핵 감축과 수비용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부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새로운 구상은 아니지만 미사일 방어망은 1972년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과 상치되고 무한 군비 경쟁을 부추길 뿐이라며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유럽 각국도 반발하는 터였기 때문에 이날 합의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러 정상회담에 이어 기자회견을 갖고 "두 가지(미사일 방어와 전략핵)는 함께 가는 것으로 ABM 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협약을 원한다"고 선언했다. ABC방송이 "엄청난 타결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돌파구는 마련했다"고 전하는 등 미국 언론이 '예상치 못한' 외교적 성과를 앞다퉈 주요 뉴스로 다룬 것은 물론이고정쟁을 일삼던 정치권도 여야를 가릴 것없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토머스 대슐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사우스 다코다)는 미사일 방어 체제와 전략핵무기 감축의 연계 협상에 지지를 밝혔고 트렌트 로트 공화당 원내총무(미시시피)는 "매우 대단한 일"이라고 흥분했으며 조지프 바이든 상원외교위원장(민주, 델라웨어)도 ABM 협정을 당분간 탈퇴하지 않겠다고 시사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래스카의 미사일 방어망 기지 구축은 ABM 협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미사일 방어 구상에 강력히 반대하던 러시아가 돌연 입장을 돌변한 배경은 아직 정확히 분석되지 않고 있다. 일부 군사전문가는 "미국이 강행할 사안이라면 협상해서 실속이라도 챙겨야 한다는 게 러시아의 판단"이라고 풀이했고 다른 일각에서는 "영국, 일본 등이 미국 쪽으로 기우는 마당에 계속 외면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으나 많은 외교분석가는 "러시아의 속내를 헤아리기는 시기상조"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푸틴 대통령이 "공격용 체제와 방어용 체제를 같은 틀속에서 함께 볼 태세가 돼 있다면 굳이 그 대안을 볼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면서도 "감축 수준과 대상 등은 아직 말할 게재가 아니다"고 밝힌 것도 타결까지는 요원함을 시사한 대목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 등 미국 관리들이 ABM 협정과 충돌할 미사일 방어 실험이"몇 년이 아니라 몇 달 후의 문제"라고 잇따라 밝힌 점을 감안할 때 실험에 앞서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푸틴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미국측은 ABM 협정 위반 이전에 양국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음을 푸틴 대통령이시사했다고 보고 이번 주말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모스크바로 직행해 후속 협상에 착수하는 등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으나 러시아가 고분고분 미국측구도대로 따라와 줄 것같지는 않는다는 게 외교분석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멋대로 감축하고 멋대로 늘리는 식의 일방적 전략핵 감축에 줄기차게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사일 방어망 구축으로 수비면에서 우위에 서는 만큼 공격 체제에서는 전략핵 1천기대 2천기로 러시아의 우위를 허용하는 타협안이 점쳐지고 있다. 정통한 외교분석가는 "어차피 미-러 협상은 몇 년은 걸릴 것"이라며 "조기에 협상을 끝내고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 2004년의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려는 부시대통령과 프랑스, 독일 등 국제사회의 여론을 살피며 미국 국내 정치의 흐름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머리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