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업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소" 고수가 고수를 직감하듯,거장은 거장에게 자연 마음을 빼앗기는지도 모른다. 임권택(65).한국 영화사에 "거장"으로 기록된 그는 조선말 천재화가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장승업에게 완전히 매료됐다고 했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필동의 남산 한옥마을에서 자신의 98번째 작품 "취화선(醉畵仙)"의 크랭크인에 들어간 임 감독은 "평생을 감독으로 살았고 이땅에서 작가로 보내온 지난 세월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최고봉에 오른 후에도 절대경지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던 장승업의 작가정신,그림을 그리며 어려운 시대를 예술혼으로 관통했던 그의 치열한 삶에서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나의 삶을 보았고 진한 애착을 느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취화선은 현실의 고난한 무게를 견디며 자기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에게 바치는 작은 헌사"라고 설명했다. "취화선"은 조선말기 "신필(神筆)"이자 "기인"으로 이름났던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담은 시대극.그의 오랜 작품동지인 정일성 촬영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다. 장승업역에 최민식을 비롯해 안성기 유호정 손예진등 탄탄한 진용을 갖췄다. 임 감독은 "'춘향뎐'이 판소리를 영상에 접목시킨 것이었다면 '취화선'은 잊혀져가는 한국화의 미학과 정신을 영상에 옮기는 작업"이라며 "한국화가 가진 여백의 미와 유려한 필치를 한껏 살린,느낌이 큰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프랑스 칸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제용 영화를 찍으려고 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먼저 우리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영화를 만드는게 내 뜻입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주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시성을 가지리라고 확신합니다. 모든 인생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니까요. 보편적 정서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젊은이들에게,그리고 세계적으로도"라고 답했다. 형형한 눈빛과 청년같은 미소가 여전한 임 감독은 "내 영화중 최고의 걸작은 '다음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해왔어요. 만들고 나서는 기대만큼 안됐다는 반성도 많이 했고.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영화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다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고 말을 맺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