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부진이 심화되면서 실물 경제의 회복이 멀어지는 양상이다. 주력수출품인 반도체의 현물 가격의 약세가 이어지면서 수출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9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5월중 산업활동 동향'을 살펴보면 수출부진이 생산, 출하, 설비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올 들어 경기회복의 기대감을 북돋우며 뚜렷한 신호를 기대하던 정부는 하반기 경제운용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도소매 판매 등 내수는 소비심리의 회복세를 반영하면서 경기를 지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수출주도형의 경제형태를 지니고 있는 특성상 수출부진에 대한 인식은 심각하다. ◆ 경기회복 더디다 =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희석되고 있다. 산업생산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30%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5월 산업생산 증가율(2.3%)은 앞선 4개월간의 기대감을 꺾어버리고 있다. 박화수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5월 지표만 놓고 봤을 때 상당폭 둔화된 것이 사실이다"며 "이전에 저점이니 바닥이니 하는 말들은 아직 쓰기 어렵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으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산증가율이 8∼10%는 돼야 잠재성장률 5∼6%선을 달성할 수 있다"며 "지난 1∼4월까지 계절적 요인을 제외하고 5∼6%선을 유지해 작년 후반의 둔화세가 진정되는 것으로 봤으나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는 여전히 점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회복 시점을 더디게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설비투자의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 부진의 탈출구가 쉽사리 나오지 않자 설비투자도 6.6% 감소, 7개월째 내리막이다. 지난해 11월 1.1% 감소한 이래 나아질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 부진의 늪에 빠진 수출 = 외환위기 탈출의 구원투수로 적극 나섰던 수출이 최근 둔화세에 빠진 경기를 회복세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산업활동 지표는 이같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수출출하가 101개월, 8년5개월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출출하는 지난 92년 12월 3.3%의 감소세를 보인바 있으며 이후 줄곧 증가세를 유지해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대개 두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였던 수출출하는 지난해 11월 4.7%의 한자릿수를 보인 이래 지난 3월을 제외하고 한자릿수 증가율에 그쳤었다. 금액 기준 수출은 지난 3월 이후 감소세를 밟고 있으며 이달 들어서도 28일 현재 11.5% 감소한 112억200만달러에 그치고 있어 6월 수출출하도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이같은 감소세 전환에는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컴퓨터 수출부진이 점차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 반도체와 사무회계용기계(컴퓨터) 출하는 각각 6.6% 및 10.6%의 높은 감소세를 보였다. 언제쯤이면 수출이 증가세로 반전할 지는 외부 요인에 달려있다. 수출회복의 열쇠를 미국 경제와 정보기술(IT)관련 제품 시장이 쥐고 있는 것. 박화수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5월 산업활동 중 수출이 가장 부진했으며 이가 지표를 둔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며 "앞으로 미국 경제 회복과 IT관련 제품의 회복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반도체 수출회복 '기대감과 현실사이' = 이날 산업자원부에서 발표한 상반기 반도체 수출 상황도 좋지 않다. 이달말까지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감소한 86억9,000만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하락세를 잇고 있는 D램 가격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80% 하락한 것이 원인이다. 다만 지난해 10월이후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는 반도체 수출이 이달에는 12억8,000만달러를 기록, 올들어 처음으로 전달보다 다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산자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반도체가격 회복을 위한 생산조절 움직임이 확대될 것"이라며 "D램 가격 하락에 따라 반도체 업계가 고가격 제품군 중심으로 제품 포트폴리오 재구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어 하반기 반도체 수출 환경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반도체 수출 역시 '미국과 IT관련 제품의 회복여부'에 매달려있다. 생산에서도 반도체는 단일 품목중 최고인 2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출부진은 재고를 크게 증가시켰다. 5월 반도체 재고율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7.3%나 증가했다. 또 제조업 가동률지수 지난해 같은 달에 대비해서도 반도체 가동률은 34.3% 줄었다. ◆ 하반기 경제운용 어려움 지속 = 정부는 다음달 2일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미 그 틀은 짜여져 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김대중 대통령에게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을 당초 5∼6%에서 4∼5%로 낮춰잡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하반기 경제운용계획과 정책과제를 보고한 바 있다. 진 부총리는 경기회복에 전력을 기울여 기업 설비투자 자금을 집중 지원하고 수출시?다변화 등에도 함께 힘을 쏟기로 했다. 진 부총리는 또 새로운 정책의 추진보다 기존 정책기조가 기업 등의 입장에서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 지 여부를 점검해 보완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갈 것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물경기 부진에 대해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재경부 관계자는 "실물경기 침체의 주원인이 대외경제 악화에 따른 반도체·IT의 수출 부진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 상황이 아니다"라며 "내수 회복세를 유지하기 위해 제한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회복은 전적으로 대외적인 여건 변화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수출과 설비투자의 회복세도 이에 맞물려 있다. 회복시기가 4/4분기, 내년 1/4분기 등으로 조금씩 늦춰지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으며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은 금리·재정정책 등을 통한 경기부양을 조심스레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다음달 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날 함께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와 5월 산업활동 지표를 놓고 고민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물가의 경우 아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콜금리 인하에 다소 부정적이지만 실물경제의 둔화가 계속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하의 여지 또한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