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sinessWeek 본사독점전재 ] 최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이 부쩍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치중해온 ECB는 그동안 각국 통화정책의 모델이 돼 왔던 게 사실이다. ECB는 역내에서 고물가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경제전문가들은 결국 ECB가 얻은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침체에다 물가불안까지 겹쳐 중앙은행이 손을 쓸 수 없었던 1970년대의 징후들이 유럽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둔화가 가속화되고 반대로 금리를 낮추면 고물가 행진이 계속되는 현상이 재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3년 제1차 오일쇼크는 선진국의 인플레를 평균 13%까지 끌어올렸다. 경기침체는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지금도 국제유가는 높게 형성되고 있다. 유로화 가치는 떨어졌고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ECB가 30년전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하지만 ECB의 힘은 당시 중앙은행들보다 미약하다. 인플레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미 연준리(FRB)와 견주면 융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되는 각종 통계수치를 종합해 보면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2%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물가지수는 4월에 이미 2.9%까지 올랐다. ECB가 당초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2%를 훨씬 넘어선 수치다. 지역경제 상황은 더욱 나쁘다. 네덜란드의 경우 지난 1·4분기 성장률은 0.1%에 그쳤다. 인플레는 4월에 5%를 상회했다. ECB가 비판받을 이유는 적지 않다. ECB는 인플레 목표를 너무 낮게 책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이에 따라 고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했다. 설상가상으로 빔 뒤젠베르크 ECB총재는 최근 "우리 목표는 유로화 안정이 아니다"라고 발언,유로화 폭락을 부추겼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유럽경제가 더 나빠질 경우 ECB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는데 있다. 세계경기 하강에 대비,유럽 경제가 근본적인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유럽연합(EU) 정치인들은 우물쭈물했다. 규제개혁 세금감면 등은 결국 단행되지 못했다. 유로화 가치의 하락은 에너지의 수입단가를 올려 결국 경제성장을 늦추게 된다. 유로화 약세가 수출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현 상태로는 해외시장도 만만치 않다.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CB가 단호한 의지만 내비쳐도 유로화를 어느 정도 지탱해줄 수 있다. ECB 스스로의 족쇄도 풀 수 있다. 유럽 중앙은행들은 지난해 9월 개입을 단행,유로화 가치를 안정시킨 바 있다. 하지만 유로화는 올초부터 다시 약세로 반전됐다. 악재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ECB는 반드시 독립해야 한다. 하지만 독립적인 ECB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EU의 정치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다가오는 프랑스와 독일의 선거도 ECB에는 부담이다. 결국 유럽을 비롯 세계경제는 되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고통을 참아야 하는 것은 유럽 시민들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갈수록 무섭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6월18일자)에 실린 'ECB 혼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이길 수 없다'란 제목의 사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