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리건주 스프링필드 지역의 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켰던 키플랜드 킨클은 최근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에서 보낸 시간이 어땠는가 라는 질문을 받자 "미키 마우스의 코를 갈겨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일견 심리적 혼란이나 비뚤어진 심성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순수함을 그리워하면서 일상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해마다 디즈니의 '매직 킹덤'으로 떠나는 '순례'를 통해 만족을 얻는 미국 중산층 가족의 심리"가 투영돼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비판교육자이자 문화비평가이며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석좌교수인 헨리지루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지루 교수의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아침이슬)은 즐거움, 순수함, 깨끗함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의 야심을 신비화하는 디즈니의 '문화정치'를 비판한다. 저자는 '연간 2억명 이상이 디즈니 영화나 비디오를 보고 매주 3억9천500만명이 TV에서 디즈니 쇼를 즐기며 2억1천500만명이 디즈니 음악이 담긴 음반 테이프와 CD에 맞춰 춤을 추고...매년 전세계에서 몰려든 5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디즈니 테마공원의 입구를 통과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디즈니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묻는다. 그것은 이슬람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인종차별(「알라딘」), 여성의 수동적인 역할(「미녀와 야수」), 혐오스런 하이에나 역할에 쓰이는 가난한 흑인이나 남미 원주민의 말투(「라이온 킹」) 등이다. 일례로 남부 이슬람연합회 대변인인 요셉 살렘은 「알라딘」을 본 후 "모든 나쁜 놈들은 턱수염을 길렀고, 크고 우뚝한 코를 가졌으며 악의에 찬 눈매와 심한 사투리를 쓰고 항상 칼을 휘둘러댄다. 반면에 알라딘은 큰 코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코는 작다...내 딸은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이 아랍 사람이라는 사실이 창피하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순수와 환상의 세계로 포장된 디즈니 세계의 이면에는 이처럼 다양한 인종적, 성적 편견과 왜곡의 메시지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순수를 가장한 디즈니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디어가 정치.교육.사회적으로 중요한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찰하게 하는 비판적 교육형태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디즈니 문화를 단순히 기쁨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오락물로 바라보지 않고 그것이 혹시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가치를 약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를 비판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그리고 라이온 킹 등으로 이어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계보가 전혀 낯설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도 지루 교수의 충고는 참고할 만하다. 224쪽. 8천원.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