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부정책 신뢰회복 조건 ..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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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이 과연 우리 경제의 회생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에서부터 공적자금의 추가투입은 더 이상 없는 것인지,공적자금의 회수부진이 우리 재정의 건전화나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인지,공적자금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였는지,시행착오는 어느 정도인지 등 공적자금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각종 의구성 문제제기는 정부정책의 신뢰를 추락시키기에 충분하다
얼마전 한 국책연구원의 '공적자금의 재정수지에 대한 장기적 영향'이란 보고서가 '정부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5개월째 대외발표가 금지되고 있다는 보도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실소를 금할 길 없다.
설령 모형설정에 있어서나 경제성장률 등 몇몇 경제지표의 가정에 있어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공적자금의 회수부진이 초래할 우리 재정의 어려움을 환기시킨 논문으로서 정책입안자들에게 참고자료로서의 값어치가 있다.
이러한 정책당국의 자세가 국민의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나아가서는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게 됨은 역사적 진리다.
정부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세번째 조성한 공적자금도 정말 마지막으로 믿는 전문가는 드물다.
수십조원의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불가피하다는 한 외국기관의 보고서는 공적자금에 대한 정부정책의 신뢰도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지표로 간주할 수도 있을 성 싶다.
작년 말까지 금융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올 2월까지 4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시적 희망을 불어넣기보다는 정책의 신뢰도나 대외 신용도를 약화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작년 말 한빛 등 6개 은행에 대한 완전감자 조치는 대표적 정책불신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자는 없다"던 정책입안자의 호언이 하루 아침에 바뀌어 대다수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 비율이 4%라고 공시했던 한빛은행이 어떻게 두달만에 0%로 낮아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정책당국의 말바꾸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시행착오가 오늘날 우리 경제의 현 주소임을 웅변하고 있다.
정부정책의 신뢰추락 사례는 부문별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의약분업 의료보험재정에서부터 양파 마늘 파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산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지만,농업분야에서는 정책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분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올 초에는 폭설로 인한 비닐하우스 재배농민과 양계농민들이 시름에 잠겨 있다는 보도가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또 얼마 전에는 중국산 마늘 수입으로 인한 대처방안으로 권장됐던 양파재배면적 확대가 가격폭락을 가져와 폐기 처분하는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기사가 국민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고추 양파 마늘 파동에서부터 소값 돼지값 파동에 이르기까지 농정의 부재는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으며 이러한 경험이 농민들의 농정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으로 이어져 왔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국민들의 불신이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경제외적인,특히 정치적 동기에 의해 정책이 수시로 변경되고,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고 종국에는 정책의 효과가 급감하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뷰캐넌 교수는 이를 방지하는 대안 중의 하나로 균형예산이나 '재정 건전화 특별법'과 같은 입법화를 통해 건전 재정을 제도화하기를 권고한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적자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천문학적으로 투입된 공적자금의 저조한 회수 실적을 감안한다면 국회에 계류중인 '재정 건전화 특별법'은 조속히 처리돼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의 와중에 국민의 성원 아래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신뢰회복의 첩경은 외환위기 초심으로 돌아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다.
진정한 개혁이라면 첫 걸음이 크지 않아도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개혁의 숨결을 국민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른 고통도 감내할 것이다.
mw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