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회의 전면에서 사라지던 때가 있었다. 노인들만 뒷방 늙은이가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삶의 무거움에 더욱 허덕거리게 되었다. 노인들이 거쳐간 굴곡에서의 지혜로운 교훈을 활용할 수가 없어서이다. 이제 중년들이 직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아래 '중년 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거리에서 그리고 등산로에서 재기의 날을 위해 몸부림치지만,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평균 수명이 75∼80세까지 늘었다는데 앞으로 남은 20∼30년을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암울하기만 하다. 중년들을 바라보는 청년들도 심사가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태어나 25년여를 배우고 군대 다녀오는 등 취업 준비를 하고 살아왔는데 운좋아야 25년 일하고,그리고는 또다른 25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취업준비서에 나오는 '직업 로드맵'도 바뀌었다. '40대가 되면 퇴직준비를 하면서 제2의 생을 설계하라'고 권고한다. 그런데 성인발달단계에서 보면 중년은 인생의 정점에 와 있다. 그들은 젊은이처럼 어리석지도,노인처럼 약하지도 않다. 직장에서는 '지배세대'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중년은 '건강과 사랑과 돈,그리고 이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 세대다. 직장에서 중년은 의사결정의 핵에 해당한다. 그들은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까지도 업무와 연결시키면서 큰 정보를 추론하고 조직 전체의 수준에서 재단한다. 현장의 업무를 파악한 위에 인적관리까지 할 수 있다. 풍부한 경험에서 축적된 지혜로 자신들이 개별적으로 깨달았던 지혜를 통합시킨 덕분이다. 중년들은 불가능한 꿈을 버리며,융통성 없이 고집하던 습벽을 버린다. 행위의 경제(economy of action)대로 움직인다. 복잡한 직무를 수행할 때 그 본질적인 요건을 꿰뚫는다. IMF체제 이후 회사들은 중년이 필요없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중년들의 판단력,지혜,도량,감상적이지 않은 연민,넓은 시야와 같은 실질적 지능(practical intelligence) 부분을 활용할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 뛰어난 책임자 실행자를 잃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절대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기능적 유연성이 아닌 양적 유연성을 추구한 대가다. 회사는 변화한 업무환경에서 중년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지 모른다. 중년들의 능력과 젊은이들의 능력이 시너지효과를 내는 업무조직이 무엇인지 모르며,설사 알아도 개편할 태세도 아니다. 실업정책을 만드는 정책결정자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모범답안이 없다. 평생교육을 강조하는 교육부나 성인교육 학자들도 정작 중년의 재교육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현재에 있는 직업교육과정은 중년들이 실제로 배울 수 있는 현실적인 훈련과정은 아니다. 예컨대 40∼50대는 컴퓨터에 노출되지 않은 세대일 뿐만 아니라 설사 배워도 주위의 사람들과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있다. e메일을 보낼 친구가 없으며,통신을 상대해 줄 사람도 적다. 그들이 컴퓨터를 배우고 감각을 기르는 과정은 20∼30대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중년들이 맡는 업무에서 요구되는 컴퓨터지식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이 알아야 될 기술적 지식은 아니다. 그러나 대상에 따라 분화된 교육과정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구조조정 담당자,정책결정자,학자들은 중년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어떤 식으로 보완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또 그들에게 적합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직장에서 새로운 지배세대로 태어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은 중년 자신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제화된 오늘날 중년을 훌륭한 지휘관으로 길러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장수 없이 승리한 전쟁'은 없다. lmn@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