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이 < 문학평론가 whitesnow1@daum.net >

''문명의 역사는 야만의 폭력을 잠재운 역사다'' 이 명제는 맞을까.

부분적으로 옳겠지만 문명은 자연의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괴한 폭력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유형의 폭력보다 더 잔혹한 무형의 폭력이 포함된다.

첨단문명이 가속화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언제 누가 휘두르는지 알 수조차 없는 이 폭력은 갈수록 정교하고 악랄해져 간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갖가지 무형의 폭력이 번식하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인터넷을 집에 비유한다면 이는 거대한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무수히 늘어선 개인들의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은 한 개인을 위한 밀실이다.

밀실에서 개인은 고립되지만 동시에 익명의 자유를 누린다.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광경은 생체실험에 쓸 인간들을 수많은 캡슐에 가둬 둔 미래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인터넷은 인간을 거의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루종일 꼼짝없이 의자 앞에 앉아 있게 하고,음식과 휴식이 없이도 견디게 하며,인간의 얼굴이 아닌 사각의 모니터를 보며 온갖 욕망과 상상,환상을 꿈꾸게 한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반자연적인 일을 인간이 스스로 ''자발적으로''행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으로 ''강요된 자발성''이다.

그 뒤에는 강요받고 있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게 인간을 세뇌한 보이지 않는 권력이 숨어 있다.

인터넷이 유발한 또 하나의 문제는 고립된 개인들이 익명의 자유를 등에 업고 끔찍한 언어 폭력을 휘두른다는 점이다.

수많은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비방이 난무한다.

그들은 마치 인간 이하의 행위를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상품을 팔아 이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회사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인에게 접근한다.

매일 아이디를 바꾸어 보내는 광고메일은 개인을 일방적인 폭력의 희생양이 되게 한다.

물론 메일 수신거부 기능을 작동하면 메일을 받지 않을 수 있지만 광고메일의 양은 수신거부를 할 수 있는 메일의 양을 훨씬 넘어선다.

우리는 흔히 현대사회의 자연파괴 문제를 생각할 때 인간을 제외한 상태에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