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체 직원에서 무역업체 사장으로,이젠 첨단 광(光)산업체 최고경영자로….

세협테크닉스 박정수(56)회장의 사업 역정은 숨가뿐 변화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변화가 아니면 도태''라는 자신의 경영철학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해 왔다.

스스로를 ''국산화(國産化) 인생''이라고 부를 만큼 첨단 기술개발에 자신의 혼과 열정을 바치고 있다.

그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광주 하남산업단지내 비디오 헤드드럼 전문생산업체인 세협테크닉스를 만 7년만에 연간 매출 1백억원대의 탄탄한 중견업체로 키워냈다.

첨단광산업 벤처기업인 포랩(FOLAB)도 설립,경영하는 등 ''첨단 광산업제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살았다.

창립후 6년여동안 매일 수위실내 2평 남짓한 방에서 기거해 왔다.

연구개발을 위해 출·퇴근시간마저 아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1년전부터 마케팅 분야에 치중하면서 공장 인근에 20평짜리 임대아파트를 얻었다.

이에 따라 ''회사 붙박이'' 신세에선 졸업했지만 그는 여전히 회사를 집으로 여기고 있다.

박 회장이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지난 84년.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인 산다에서 기획실장 비서실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익힌 노하우를 자신의 사업에 활용해 보고 싶어서였다.

서울에서 세협양행이라는 무역업체를 세운 박 회장은 일본에서 전자부품을 수입,대기업에 납품하면서 손쉽게 돈을 벌었다.

10년동안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온 박 회장의 기질은 ''현실 안주''를 용납하지 않았다.

지난 94년 그는 직접 전자부품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고 세협테크닉스를 창업했다.

당장 일상생활이 확 바뀌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수한 제품을 다른 회사보다 싼 값에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품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는 ''앞선 기술''이라고 판단했다.

최고경영자인 자신부터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박 회장의 이같은 열의는 회사 설립 1년만에 국내 최초로 진공다이캐스팅공법을 개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1년여동안 일본 관련 기업들의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이 공법의 개발로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던 비디오헤드드럼류와 컴퓨터 기억장치부품을 국산화할 수 있게 됐다.

회사도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로 인해 외환위기 시절에도 매출과 종업원수를 늘렸다.

진공다이캐스팅공법은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해 6월에는 광주과학기술원과 함께 초고속통신망에서 광섬유를 연결하는 부품인 광통신커플러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제품은 세협에서 분사된 벤처기업인 포랩(FOLAP)을 통해 지난 3월부터 양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광섬유제품 및 광응용소자를 양산해 내는 세협포토닉스센터를 공장내에 설립하는 등 첨단제품 제조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박 회장이 현재 준비중인 야심작은 MEMS(초소형 전자기계시스템).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초소형로봇 등을 만드는 기술이다.

현재 산업자원부 중기거점과제로 선정돼 향후 4년간 2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게 된다.

광주과기원,한국전자부품연구원과 공동으로 올 하반기부터 이 기술이 적용되는 광스위치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이 기술이 전자산업은 물론 항공우주산업 의료 바이오·제약산업 등의 발달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박 회장이 갖고 있는 다른 경영철학은 ''회사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에 따라 기업을 자식들에게 념겨주지 않을 작정이다.

연말마다 종업원들에게 성과급으로 회사 주식을 나눠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은퇴한 뒤 복지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회사의 경영권도 이 재단에 넘겨줄 계획이다.

박 회장은 "워낙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비 비중이 크다보니 아직 순익이 많지 않다"며 "오는 2004년께 매출이 1천억원으로 늘어나면서 회사의 순익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062)952-1322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