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국.과장들이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다.

과천 청사는 늦은 밤에도 불을 훤하게 밝히고 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경제 현안을 고민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국.과의 기본적인 업무지식을 ''벼락치기''로 배우는 중이다.

A 국장은 "매일 밤 10시까지 공부한 뒤 퇴근한다"는 학습계획까지 세워놓고서 문서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공부하고 있다.

낮에도 부하 사무관의 과외지도를 받는다.

경제관료 경력만 따져도 20년이 넘는 사람들을 무엇이 학업전선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 네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단행된 인사가 ''주범''이다.

1급 공무원 전원이 교체됐고 국.과장급은 보직이 바뀌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장은 1급이 물어보는 것을 과장에게 질문하고,과장은 사무관에게 달려가는 안쓰러운 광경이 빚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B 국장은 "모 과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결국 해당 현안에 대한 10년전 논의 내용부터 갖고 오라고 해서 하나하나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더 곤란케 하는 것은 요즘이 경제부처에 일종의 비상시국이라는 점.올초까지만 해도 올해 연평균 5∼6% 성장이 가능하다고 자신했지만 이제는 4% 미만 가능성을 인정해야 할 판이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내달까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해 둔 상태지만 아직 뾰족한 수가 없다.

물가는 지난 4월말 현재 전년 동월대비 5%대 상승률을 보여 연간 물가관리 목표 3%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금시장도 여전히 불안하다.

기업구조조정은 재계의 반발에 부딪쳤고 출자총액한도제도,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 등 기업 관련 핵심 규제는 존폐 여부를 놓고 시비가 일고 있다.

경제관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인데 현장 사령관 역할을 해야 할 국.과장들은 업무파악조차 안돼있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불꺼진 방도 없지는 않다.

방 주인이 공부를 끝내고 퇴청해서가 아니라 공부가 필요한 학생(방 주인)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총괄하는 정책조정심의관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다.

임영록 국장이 내정돼 있지만 개방형 공무원 임용절차가 끝나지 않아 정식 발령을 받지 못했다.

갑작스런 인사 명령으로 해외에서 급거 귀국하는 바람에 허름한 호텔방을 전전하는 국장도 있다.

유럽지역에서 재경관으로 근무하다 발령을 받은 이 국장은 과천 정부청사 근처 조그만 호텔방을 집으로 삼아 가족을 기다리며 외로운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